하드코어 한 음식

홍어삼합, 과메기, 산 낙지

by ㅎㅎ

나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친가는 경상도이고, 외가는 전라도라서 어릴 때부터 양쪽 지역음식을 다 맛보고 자랐다. 그리고 중학교 때 가족들과 전국에 명산을 등반했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충청도 강원도 음식까지 섭렵하게 됐다. 전주의 콩나물해장국, 단양에 떡갈비, 안동 찜닭... 이렇게 대중적인 각 고장의 음식은 아마 누구나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로 그 고장에서만 먹는 향토 음식은 어려울 때가 있다. 홍어삼합이나 과메기, 산 낙지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나는 산 낙지랑 과메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어릴 때 우리 가족은 강원도 속초로 휴가를 간 적이 많은데, 그때 아빠는 대포항에 가서 산 낙지랑 오징어를 시켰다. 지금은 오징어가 엄청 비싸지만, 그때는 우리나라 바다에서 오징어가 많이 잡히고 값이 쌀 때였다. 그때의 경험이 나쁘지 않았는지 난 날것의 음식을 아직도 잘 먹는데, 비린 것도 잘 먹는 편이다. 그런 나도 홍어삼합만큼은 아직도 거부감이 든다. 외할머니가 해주신 홍어무침은 없어서 못 먹을 만큼 홍어에 익숙하지만, 그 톡 쏘는 삼합에 홍어 삭힌 맛은 두 세 점 이상 먹고 싶지 않게 만든다. 그래도 매번 한두 점 씩은 꼭꼭 먹는 편이다. 신기하게도. 그런걸 보면, 언젠가 홍어삼합도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반면에 내 주변에 어떤 사람은 제주도가 고향이지만, 회를 전혀 먹지 못한다. 물컹거리는 그 식감이 싫어서 회, 버섯... 이런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다른 건 다 잘 먹는데 계란을 싫어한다. 그 이유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꼭 홍어삼합이 아니라 계란이나 회처럼 평범한 음식도 어떤이들에겐 하드코어 한 음식일 테다.



지난주부터 대학 동기들과 스터디를 시작했다. 음악 스터디인 셈인데, 큰 기대를 가지고 하는 건 아니고... 우리가 잘 몰랐던 작품들에 대해 조금씩 공부하고 이야기 나누자는 취지이다. 사실, 우리는 이제 모두 성인이 아닌가. 어떤 이슈를 이야기하기엔 서로의 사정이 모두 달랐다. 그래서 말 한 사람은 별 뜻이 없어도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꾸 시시콜콜한 소득 없는 아무 이야기나 하게 되었다. 그러느니.. 우리의 공통분모인 음악이야기를 하면 스트레스도 풀리고 공부도 되고 좋지 않겠냐는 취지였다. 아직 한 번밖에 안 하긴 했지만 모두 퇴근하고 모였음에도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한 번 모일 때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나누기로 했는데, 이번 주제는 브르크너 마지막 9번 교향곡이었다. 이번 주제는 내가 선정했는데, 전혀 모르는 곡이기 때문에 선정했다. 사실, 브르크너는 잘 모른다고 말하기 창피할 만큼 많이 연주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아노와 어떤 접점이 없다 보니 안 듣게 되고 어느새 다가가기 힘든 작곡가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나는 브루크너가 어느 나라 태생 인지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이번에 이 스터디를 준비하다 보니, 브르크너 교향곡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 공부해야만 했다. 공부하다 보니, 브루크너에게 애정이 생겼다. 천재였던 모차르트, 베토벤 등... 많은 작곡가와 다르게 브루크너는 음악교사로 서른까지 알 하다가 마흔쯤이 되어서야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순이 되어서야 작곡가로서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 그 사람의 생애를 들여다보니 평범한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안도와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용기도 더불어 얻었다. 아는 만큼 들린다고 브르크너에 대해 공부하고 보니 그리고 의무감을 가지고 한 세 번 듣다 보니, 어느새 브르크너가 조금 친숙해졌다. 이전엔 연주 프로그램에 브르크너 작품이 있으면 그 연주회에 잘 안 가게 되었는데, 이제는 공연장에서 그의 작품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언젠간 '나 브르크너 몇 번 교향곡 좋아해!'라고 말하는 날이 올 것 같기도 하다. 술이나 음식같이 상대방이 싫어하는 음식은 억지로 권하면 안 된다. 홍어처럼 하드코어 한 음식도 그렇고 계란처럼 평범한 음식도 말이다. 하지만, 음악은 스스로 억지로 권해봐도 좋지 않을까 싶다. 물론, 사람마다 취향이 있어서 억지로 몇 번 듣는다고 그 음악들이 모두 좋아지진 않겠으나... 분명 그중에 몇 곡은 사랑하게 될 것이다. 브루크너는 전까진 나에게 하드코어 한 음악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홍어처럼 몇 번은 들어보고 싶은 그런 음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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