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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MIYA Aug 26. 2021

이·독·취_02.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가면서

이런 것도 독립출판물로 취급해주나요?_02 /#당신이 옳다_정혜신 저

'월요일에 전공수업이 끝나자마자 도서관에 달려가자.'


 처음 그렇게 마음을 먹은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또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어릴 적부터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내 공간에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제가 또래의 다른 녀석들보다 책을 많이 읽는 건 아니었습니다. 중학생 때에는 잡지에 딸려온 손바닥만 한 크기의 일러스트 모음집이 너무 갖고 싶어서 엄마를 졸라 획득해낸 뒤, 그 모음집에 혼자 소설을 쓰고 놀았구요. 마음에 드는 표지의 판타지 소설을 사서 읽거나. 책이나 글과 관련된 취미는 그 정도였습니다


 도서관과 서점 같은 글로 채워진 공간을 갔을 때 기분이 좋았던 건,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그것도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어 본 적 없는 이들이 하는 진솔한 이야기들을 듣고 싶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얼굴이 아닌, 글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은 편견 없이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같다고 느낍니다. 뉴스에 나오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 수많은 글자와 함께 신문의 한 페이지를 채우는 사람들, 자극적인 문구와 함께 유튜브 영상의 썸네일을 꾸미고 있는 사람들....... 그 들은 기자의 시선과 편집자의 시선. 적으면 한 두 번부터 많으면 수십수백 명의 시선을 거치고 거쳐 만들어진 모습으로 자신을 보여주게 됩니다.


 자신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낸, 혹은 겪고 있는 그 들의 세상을 읽고 듣는 과정이 좋았습니다. 소설은 그들의 세상에서 영감을 받고 만들어내는 최초의 세계이고, 그것을 읽는 과정은 최초의 세계를 보며 경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에세이는 조금 더 가깝고 현실적인 방식으로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렸을 적부터 거짓말과는 거리가 멀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저와 같은 마음과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 짐작한 저는 대인 관계가 쉽지만은 않았고, 갈등도 자주 겪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저와 같지 않다는 걸 안 뒤부터 인 것 같습니다. 각자만의 글들로 가득 찬 공간을 좋아하게 된 게요.


 책을 읽을 때는,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의 편견을 거치지 않고요. 차근히 그의 생각을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어 내릴 때의 상황과 감정이 아무런 정제도 없이 전해집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서 두 권의 책을 빌리고 한 주동안 그 책의 저자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지금 매주 두 권의 책을 읽은 지 반년 정도 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 글은 우연히 추천받은 에세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데요, '당신이 옳다'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 '정혜선' 작가는 정신과 의사입니다. 위로의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사람들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만나며 공감으로 우리 사회의 진실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섬세한 따뜻함으로 그들의 뾰족한 세상을 사포질 해줍니다. 포근하게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건 사고들은 뉴스와 SNS 등으로 너무나도 빠르고 거친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그리고 공감이 필요한 사람들이 수많은 미디어와 누군가의 편견을 통해 왜곡되고, 찌그러집니다. 정작 위로를 받아야 하는 이들이 더욱 움츠러들고, 우리의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게 되는 것이죠. 정혜신 작가는 글을 통해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가 우리와 많이 다른 이들이 아니라, 우리 바로 옆의 행인일 수도, 미디어 속의 혐오 대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제가 이 책을 읽던 것은 4월 둘째 주였고요, 작가의 생각을 더 가까이 느꼈던 건 그 다음 주.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던 병원 데스크에서의 일 덕분이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평소와 같이 투명 유리문을 통해 병원의 입구 밖을 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자동문 버튼을 눌러 병원에 들어서는 환자들이 없는지 곁눈질하며, 신규 환자의 명단을 정리하고 있었죠. 그러던 와중 버튼을 눌러야 열리는 유리문이 열리지 못하고 덜컹덜컹거리는 소리를 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문쪽을 살펴보니, 어떤 60대 정도 되어 보이시는 아저씨께서 입구에서 유리문을 강제로 밀며 두리번거리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고 단정 지으며 문을 열어드리지도 않고 '뭐야.. 이상한 사람인가' 하며 인상만 찡그릴 뿐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아저씨의 세상을 더 뾰족하게 만들었던 겁니다. 그렇게 10초 정도를 더 병원 입구에서 버벅거리시던 아저씨는 마침내 자동문 버튼을 누르고, 멋쩍게 웃으며 들어오셨습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당연히 이상한 사람일 것이라는 색안경을 낀 채로 인사를 하고, 접수를 받으려 했습니다.

"병원 방문하신 적 있으세요?" 제가 여쭈었습니다.

"아니요, 없을 거예요." 간단한 대화를 나누며 보았던 아저씨는 왜인지 움츠러든 느낌이었고,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계셨습니다.

"그럼 신규 명부 작성 부탁드립니다" 저는 성함, 연락처, 주민등록번호를 기록할 종이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아저씨는 간단한 개인정보 작성 종이 위로 손을 올린 채로 한참을 부들부들 떨며 제 눈치만 보셨습니다. 저는 그때마저도 뉴스에서 보았던 바바리맨을 떠올렸고, 유튜브 영상 속 조현병 환자를 떠올렸습니다. 순간 뉴스 속 무서운 장면들이 떠오른 게 제 의지가 아님은 분명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제가 그 장면들을 머릿속에 채우고 있을 때, 아저씨는 질문하셨습니다.

"여... 연락처.. 연락처가.. 뭐죠...? 제가 치매 환자라.. 정.. 정신이..."


 그때야 저는 제 세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분명한 건 제가 앉아있던 병원 입구에서부터 아저씨의 세상을 날카롭게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이었고, 아저씨는 계속해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작게 작게, 더 작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정신이 없어 대답을 못하고 있던 와중,

"제가 아이들 가르치는 한자 강사인데,  여.. 여기요.... 이거 봐주시면...." 하며 한자 능력 검정 자격증을 건네주셨습니다. 자격증은 1급이셨습니다. 그에게 치매가 오기 전까지는 어떤 생활을 하셨었을까요. 이 분도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주고 도움을 주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당신의 연락처도 적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도움을 받으면서 살 수 도 있습니다. 불편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니까요. 이런 사소한 도움을 바라는 게 불편해져 버린, 죄를 지은 것처럼 자꾸 스스로 움츠러들게 만드는 사회와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버린 제가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이후로도 아저씨께서는 진료를 받기 전, 로비 소파에 앉아서도 계속해서 저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눈치를 보셨습니다. 진료를 받고 나서는 진료비 납부를 잊고, 처방전도 놓고 가셔서 갖다 드려야 하는 실수도 하셨죠. 제가 이런 상황에 막막함을 느낀 건 어디서부터 해결을 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저 점점 축축하게 쳐지는 눈 가를 애써 모른 채하며 마스크를 눈 바로 아래까지 추켜올릴 뿐이었습니다.


 뉴스와 유튜브 속 세상이 아예 다른 사람들의 세상, 만들어진 거짓된 사회라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가까운 세상 속의 약자들에게도 그 들만의 진솔한 이야기가 있고, 들어주길 바라는 말들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전공 수업이 끝나고 가벼운 마음으로 도서관에 한 번 들리는 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가벼운 마음으로 편견을 버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여러분도 저같은 경험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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