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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CMIYA Aug 26. 2021

이·독·취_01. 새로운 주인을 만나

이런 것도 독립출판물로 취급해주나요?_01

 오늘은 나의 장면 속, 15년 동안 자리 잡고 있던 그리운 피사체를 보냈습니다.


 어제까지 거실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커다란 피아노는 하루라도 빨리 팔아버리고 싶은 짐이었습니다. 거실의 텔레비전 옆에는 컴퓨터와 프린터를 두었고, 프린터기의 바로 옆에는 피아노를 두었었습니다. 과제 때문에 프린터를 사용해야 할 때면 피아노 의자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한쪽 팔을 걸치기 위해 사용하는 정도였고, 마지막으로 피아노를 연주한 건 언젠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조금 예전의 기억을 떠올려보면요. 지금보다 더 어렸기 때문에 가족들의 물건들로 제 방을 채우고 있었을 때입니다. 이제는 익숙해진 저의 방이 혼자만의 물건들로 채워지기 이전에. 피아노가 제 방에 있을 때. 내 방이 우리 가족의 방일 때. 내게 지금보다 더 중요했던 피아노였기 때문일까요. 혼자만의 짐으로 가득 채우지 않아도 그 공간이 소중했습니다. 이사를 오기 전. 지금은 없는, 저와 동생이 함께 쓰는 방에 피아노가 있었을 때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어머니가 일을 하시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어머니가 주말이든 평일이든 동네의 아주머니들과 함께 시간을 자주 보냈고, 우리 집에도 자주 놀러 오셨었습니다. 그때 저는 막 체르니에 들어갔었고, 학원에서와는 달리 부모님의 무한한 칭찬을 받으면서 치는 제 방의 피아노를 매우 좋아했죠. 제 방의 문을 열면 거실에 앉아 계시는 어머니가 바로 보였고, 거실의 테이블에 앉아 고개를 돌리면 바로 제 방의 피아노가 보였습니다. 어머니는 거실에서 따뜻한 눈빛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거실에서부터 일직선으로 비춰 오는 따사로운 햇빛은 제 방까지 들어왔습니다. 어머니의 흐뭇한 미소는 햇빛과 함께 무대 위의 피아니스트를 밝혀주는 조명처럼 저를 환히 비춰주었습니다.


 저는 드디어 어디선가 들어본 곡을 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학원을 마치고 집에 와서도 종종 연습을 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아유, 우리 딸 너무 잘 친다. 엄마는 우리 딸이 피아노를 칠 때 그렇게 좋드라 엄마 그거 쳐줄 수 있어? 뭐였지....? 에델바이스! 그거 쳐줄 수 있어?"

제가 연주하는 곡은 정말 쉬운 편이었음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쳐본 적이 없는 새로운 곡을 쳐달라고도 하셨었습니다. 학원에서 사용했던 악보와 교재를 뒤적거리다, 교재에 있는 곡이면 온 힘을 다해 쳐드렸죠. 거의 3번 소리를 낼 때마다 한 번씩 버벅거렸지만 어머니는 제가 콩쿠르대회에서 상이라도 탄 것처럼 좋아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내가 피아노를 칠 때 진짜 너무 좋아해! 영원히 쳐주고 싶어! 피아니스트가 되면 맨날 쳐줄 수 있겠지?'


 그렇게 5~6년 정도를 보냈지만, 그 이후에는 제가 중학생이 되었고, 어머니는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피아노 학원 대신 영어와 수학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즈음 제 방은 저만의 물건들로 채워지는데 급급했고, 피아노는 거실로 옮겨졌습니다. 갈색의 피아노는 거실 한편에서 햇빛을 등지고, 뚜껑이 닫힌 채로 회색 먼지가 쌓여갔습니다. 그리고 몇 번의 이사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점점 더 귀찮은 애물단지가 되어갔습니다.


 피아노와 함께 보낸 초등학생 때까지의 추억은 그저 어릴 적 평범한 기억 중 하나가 되어 갔고, 피아노를 칠 때의 두근거리고 생생한 느낌은 빛바랜 사진처럼 색을 잃어갔습니다. 아주 가끔 어릴 때의 사진 앨범을 꺼내 볼 때와 피아노에서 동생과 장난을 치는 사진, 제가 피아노 연주회를 대비해 집중해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사진을 볼 때. 그 순간 동안만 그 기억은 아련한 추억이 되어 쨍한 색을 띠었습니다. 제 방에는 저만의 물건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거실에는 나가지 않아도 다양한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실에 둔 피아노는 점점 아무런 느낌을 전해주지 못하였고, 거실을 지나 들어왔던 따수운 햇빛도 닫힌 제 방문을 보고 되돌아갔습니다.

 

 아주 가끔. 거실의 프린트기를 사용해야 할 때, 그때 프린트기의 바로 옆에 있는 피아노 의자의 팔걸이의 역할이 필요할 때만 쓰임이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러다 작년 즈음 어머니는 우리 이제 피아노 그냥 팔까?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그때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들었던 악기를 제대로 다룰 줄 아는 게 있으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아쉬운 말들만이 떠올랐을 뿐, 가족과의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 피아노에 대한 고마움과 아쉬움은 없었습니다.


 "딸아, 30만 원이래. 그래도 영창꺼면 더 비쌀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 그냥 조금 더 가격이 오르면 팔자. 에이, 얼른 치워버리고 싶은데."

어머니도 저와 비슷했습니다. 피아노에 대한 정은 찾아볼 수 없었죠.

 그리고, 오늘. 팔아버리자는 이야기가 나온 지 약 1년 뒤. 피아노를 팔게 되었습니다. 어젯밤 어머니는 오랜만에 거실로 나와 야식을 먹던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우리 피아노 그냥 5만 원에 팔기로 했어. 코로나 때문에 해외로 수출이 안돼서 비싸게 안 쳐준다네. 그냥 작년에 파는 게 맞았나 싶긴 한데, 이제라도 얼른 치워버릴 수 있어서 너무 좋다."


 그제야 서서히 아쉽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피아노가 없어 학원에서만 치다가 처음으로 집에 나만의 피아노가 생긴 뒤 설레는 마음으로 치던 피아노. 좋아하는 곡을 배우고 집으로 돌아와 신난 채로 피아노 의자 밑으로 내려온 바닥에 닿지 않는 짧은 다리를 앞뒤 앞뒤 흔들거리면서 치던 피아노, 집에 어머니 친구들이 오시면 뿌듯한 마음으로 쑥스럽게 웃으며 치던 피아노, 동생과 나란히 앉아 젓가락 행진곡을 치던 피아노···.

잘 생각해보면 피아노가 방에서 거실로 나온 뒤에도 피아노가 제게 준 소중한 기억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오히려 그 기억 속 장면들 속, 어제까지 제가 있었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피아노 매입자 분들이 오셨습니다. 아파트 복도에 서서, 피아노가 매입 트럭에 탄 채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입꼬리의 양쪽 끝이 아래로 말려들어가 팽팽하게 당겨지고, 코는 시큰한 냄새를 맡고 축축해져 왔습니다. 아쉬웠습니다. 이제 나의 장면에 내 피아노는 자리에 없다고 생각하니 가족 한 명을 보내는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저와 함께 멍하니 복도에 서서 길가의 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멀어진 피아노를 보던 제 동생은 갑자기 눈물을 터트렸습니다. 원래 정말 잘 안 우는 아이인데 말이죠. 제가 느꼈던 감정을 비슷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몇 시간이 지난 뒤 왜 울었냐고 물어본 제게 동생은 '주인님! 저를 계속 데리고 있어 주세요! 같이 노래해주세요! 아저씨! 저 데려가지 마세요!'라며 피아노가 애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에게 많은 푸근한 이야기들을 안겨주었음에도 어느 순간부터 피아노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던 것 같아 미안합니다. 피아노의 목소리는 항상 저를 위해 들려오는 것임에도 그저 시선을 깔고 귀를 막으며 외면해왔습니다. 그저 함께 도란도란 거실에 둘러앉아 이야기 나누는 가족처럼 피아노 의자에 앉아 발을 동동 흔들며 그 녀석의 노래를 들으며 연주하던 때가 지금은 벌써 그리운 마음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 공간에, 우리 가족의 공간에, 오래된 물건들 속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소중함을, 고마움을 느낍니다.


 나의 피아노가 빨리 좋은 주인을 만나 다시 선명한 색을 띨 수 있길, 어릴 적 나에게 들려주었던 다정한 목소리로 도란도란 이야기하길 바라는 마음이 드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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