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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Nov 18. 2023

3. 자퇴 러쉬

10년 후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

  교무부에서 쪽지가 왔다. 1학년 학생들의 자퇴가 이어질 예정이니 1학년 수업에 들어가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세특(세부능력특기사항)을 늦지 않게 꼭 입력해달라고. 자퇴야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것이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에서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변화를 맞이해야 하는지 생각한다.

내가 근무하는 고등학교는 일명 ‘내신 맛집’이다. 3년 동안 치르는 지필평가와 수행평가의 점수를 상대평가하여 최종 등급이 산출되는 입시 제도 아래, 공부를 좀 한다는 학생들이 자신의 등급을 조금이라도 높게 받고자 진학하는 곳.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1등급의 기준은 시험에 참여한 학생 수의 4%이내므로 학생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데, 한 학년에 300명이 넘게 재학하는 이 학교는 그런 점에서도 유리하다.

    그런데 문제는,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내신 성적을 따기 위해 너도나도 진학하니 최상위권의 벽은 학군지의 고등학교 못지않게 더 두텁다는 데 있다. 기대했던 1등급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고, 기대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리셋한다, 게임처럼. 그래서 수능 준비에 올인하거나,  다시 내신 1등급을 차곡차곡 쌓고자 1학년으로 재입학하기도 한다. 긴 인생에서 재수, 삼수보다 그게 더 낫다고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다.

  학교에 남아있는 아이들은 자퇴하는 친구들을 보며 무슨 생각이 들까? 나보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학교를 나갔으니 내 등급이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는 녀석들도 있을거고, 1등급의 파이가 줄어듦을 걱정하는 녀석들도 있을테다. 대한민국 입시제도는 현실에 눈이 밝은 아이들을 길러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고등학교 자퇴가 많아진다는 기사에 '공교육이 무너진다'는 댓글이 있었다. 그렇지 않다고, 공교육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답글을 달고 싶었지만 끝내 답글을 달지 못한 이유는 제대로 반박할 말을 못 찾았기 때문이다.

 자퇴를 결심한 아이에게 학교를 계속 다니게 할 명분이 뭐가 있을까? 그 아이가 필요로 하는 1등급을 주겠다고 약속할 수도 없고, 포기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하라고 말하기엔 무책임하다. 열심히 하지 않았을리 없다.  아이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했다. 큰 목표를 가지고 전략적으로 진학한 아이에게 성적에 맞춰 목표 대학을 낮추라 말할 수도 없다. 그쯤 되면 나도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평생교육시대에 꼭 학교를 다닐 필요가 있을까?'

  

  시험 문제를 내는 시즌이 되면 종종 아이들로부터 ‘문제를 어렵게 내달라’는 말을 듣는다. 문제가 쉽게 출제되었을 때, 매우 열심히 공부한 자신과 대충 공부한 친구들의 점수가 큰 차이없는 상황이 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얼마나 어렵든 간에 자신은 그 문제를 풀 수 있으며, 혹여나 정말 몰라서 틀린 것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부족했으니 쿨하게 수긍하겠다는 태도의 반영이다.

  시험의 난이도와 변별력은 내가 결정할 문제인데 학생들이 입을 대는 것이 마뜩치 않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다가도, 아이들의 태도에서 '내가 너보다 훨씬 더 노력하고 있다'는 오만함이나 ‘노력’으로 모든 결과를 재단하는 성급함을 읽어낼 때는 안타깝다.

 시험이 끝나고 점수를 확인할 때는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를 유발하는 줄다리기를 경험해야 한다. 점수를 줄 수 없다, 줘야 한다, 부분 점수를 줘야 한다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하곤 한다. 수업 시간에 가르친 건 나지만, 시험 문제와 점수 확인은 학부모, 학원 선생님과 같이 하는 기분을 느낄 때도 있다.

  국어라는 과목의 특성상 충분히 논쟁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0.1점으로 등급이 갈리는 상황에서 정확한 근거와 논리를 갖춘 논쟁이 아니라, '일단 이의제기를 하고 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온 아이들과 논쟁을 하노라면, 교사는 아이들의 점수를 깎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된다.

 하필 1학기에 자퇴한 S와  자퇴한다는 J는 올해 시험을 치르며 특정 과목 선생님과 치열하게 줄다리기를 했던 아이들이다.


그때 우리가 잃은 것은 0.5점의 점수말고 또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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