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맘카페에 누군가 마감시간 17시를 기준으로 정리한 고등학교별 최종 접수율이 올라왔다. 두둥~
100명이 넘게 미달이다.
신입생 정원수가 3백 명이 넘는데 겨우 200명쯤 접수했다. 인근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에서 개교 2년 차인 A고등학교가 접수 첫날부터 빠르게 접수율이 올랐고, 그보다 덜 신도시 아파트 단지 B고등학교가 마지막 날 접수율을 초과했다. 그 옆의 C고등학교도 미달이지만, A, B에서 불합격한 친구들로 채워질 만한 인원이다.
문제는 구도심 지역에 있는 나의 근무지, D고등학교다. 그런데 입학 접수율이 내 인생 성적표도 아닌데 뭘 이렇게 우울한가? 나는 이제 학교를 옮기면 그만일 텐데.
출근하자마자 삼삼오오 모여든 선생님들 틈에 나도 끼었다.
커피라도 한 잔 손에 들고 있을 법하건만 다들 출근하자마자 둥그렇게 서서(앉지도 않고!) 미달 사태의 원인을 찾고 향후 벌어질 일들을 근심하기 바빴다.
- 도서관 건물을 삐까번쩍하게 지을 게 아니라, 신도시까지 운행하는 셔틀을 운행했어야 해.
- 그때 000이, 000이 이런 애들 영향이 커. 중학교 사이에 소문이 너무 안 좋게 났어, 그런 애들은 빨리 잘라냈어야 하는데.
- 학교를 신도시 쪽으로 이전을 했어야 해.(그럼 이 지역 중학생들은요?) 이 지역 중학생도 저쪽 신도시에 있는 고등학교 가는데 뭘.(맞네..)
다 맞는 말들이다. 그러나 하나같이 교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수업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건물 설계도를 들여다보며 안에 들어갈 자재를 골랐고, 학생의 문제 행동을 해결하기 위해 상담은 물론이고 선도위원회를 몇 번이나 열었지만 문제 학생의 퇴학만 늦출 뿐이었다. 물리적 거리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진학한 아이들이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수업에 최선을 다함은 물론 온갖 행사를 마련하기도 했다.
한 해 살림 열심히 살고도, 선생님들은 힘이 빠진다.
여기저기서 탄식하듯 내뱉는 말, 내신 쓸걸.(=다른 학교 갈걸.)
내년 입학생의 최소 절반 이상이 80~100%의 성적을 받은 학생들일 것이다. 교사 입장에서는 어떻게 수업을 이끌어가야 할지 난감하다. 내신 1등급을 위해 전략적으로 진학한 아이들도 분명 있을 터, 기초적인 수업 내용만 다루고 있을 수도 없다. 수업은커녕 생활지도가 우선일지 모른다. 업무적으로는 고입설명회, 진로 및 진학지도에 몇 배의 에너지를 더 써야 할 것이다. (정원을 초과한 인근 고등학교는 최근 2년 동안 고입설명회를 하지 않았다. 할 필요가 없는 것.)
다 논할 수도 없지만, 여기까지만 쓰고도 일하기 힘들다고 징징하는 나쁜 교사 같으니까 아이들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 보자. 집 가까운 곳에서 성적 때문에 불합격하고 '어쩔 수 없이' 진학한 고등학교. 애교심이나 자긍심이 있을 리 없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 등교하는 마음은 쌍욕이 절로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내신 성적을 좀 더 잘 받아보겠다고 진학한 아이들 역시 소란한 교실 분위기에 멘탈 잡기가 보통 힘들지 않을 테고, 완벽한 카리스마로 장악하지 못하는 교사도 원망스럽겠다.
앞으로 점점 D학교의 구성원들에게 학교란 그저 거쳐가는 곳이자 견뎌내는 곳이 될 것이다.
학생들과 소통하기를 계속하며 그때그때 소소한 보람과 즐거움을 만들어 나가는 교사도 있겠으나, 점점 저물어가는 학교의 운명을 달리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좀 더 학군이 나은 곳으로 매년 이동하기를 희망할 테다.
평준화를 왜 안 하느냐고 묻는다면, 몇 해 전에 평준화 추진 찬성률이 정해진 기준을 넘지 못해 무산되었다고 들었다.
나의 집은 신도시, 구도심 살리기에 아무 관심 없는 내가 구도심에 있는 학교를 걱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