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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시옷 Jan 16. 2024

어떤 엄마의 말 못 할 고민

'똥자루 굴러간다', 김윤정 글 그림, 국민서관

이것은 내가 전해 들은 이야기다.


똥자루가 굵은 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있었다.

얼마나 굵냐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전봇대만 했다.

삼 남매가 똑같은 밥과 반찬을 먹는데 유독 한 아이만 그렇게 똥자루가 굵었다.

온 식구의 역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재래식 화장실이었더라면 다행이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집집마다 양변기가 있는 시절이다 보니 가장 큰 문제가 '변기 막힘'이었다.

처음엔 인터넷에서 좋다는 방법을 수소문하여 해결하곤 했으나 그 정도로 해결되지 않는 때가 많았다. 결국 민망함을 무릅쓰고 사람을 불러 해결한 것만 서너 번쯤.

변기를 교체해서 해결된다는 보장만 있다면야 당장 바꾸겠지만, 변기 탓이 아니면 어쩔 것인가?

갈수록 변기 막히는 날이 많아지면서 그 엄마가 맘 편히 잠들지 못하는 날도 점점 늘어났는데.

그날도 잠을 못 자 이리저리 뒤척이다 거실 전등을 켜고 앞일을 걱정하는데

'똥자루가 굴러간다'는 그림책이 눈에 띄더란다.

아이가 네댓 살쯤 즐겨보던 책이었다.

갑옷을 입고 병사들 앞에서 호령하는 표지의 장군은 놀랍게도 처녀다. 나라에 장군감이 필요해  인재를 수소문하던 차에,  시냇가에서 엄청나게 굵은 똥자루를 발견했고, 온 마을을 헤집어 똥자루의 주인을 찾고 보니 결혼도 아직 안 한 처녀였던 것이다. 나라만 잘 지키면 되지 여자인 게 대수냐 싶어 부장군으로 임명했는데, 결국 엄청난 힘과, 지략과, 똥자루의 힘으로 왜적을 물리친다.

아, 신선한 이야기였지. 재미도 있었고.

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는 엄마는 문득 궁금해진다.


처녀의 부모는 어떤 심정으로 똥자루가 어마무시하게 큰 아이를 키웠을까



어떤 심정이긴!

내 새끼 똥자루가 굵은 걸 보니 나라에서 큰 일할 녀석이로구나, 하고 키웠지. 그랬더니 말이 씨가 되더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고 듣는 사람만 있는 소름 돋는 새벽.

엄마 화들짝 놀라 얼른 이불속으로 들어가 누웠단다.

아침에 아이가 일어나면

우리 장군~하고 궁둥이를 토닥여줘야겠다 생각하며.

그 시절에 처녀가 장군이 돼서 나라를 구했다는데

내 새끼는 인공지능 뺨치는 기술자가 되어 지구를 구하지 않겠느냐고.

그러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전해 들은 이야기일 뿐

절대 내 이야기는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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