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 시옷 Feb 04. 2024

나만 빼고 다 해외여행

그래도 나쁘지 않습니다.

방학이지만 보충수업 공문 처리, 연말 정산 등등 틈틈이 학교에 다. 방학 중 출근이 나쁘지만은 않다.

아이들이 없는 교무실에서 동료선생님들과 에어프라이기에 호박고구마를 구방학 동안의 안부를 묻는 시간 한 해를 무사히 함께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뒤풀이 시간이기 때문이다.  

안부를 나누다 보면 빠질 수 없는 여행 소식.

다음 주 괌에 갈 계획 중인데 아이가 아파 조마조마한 선생님,

방학 시작 삼 주만에 벌써 두 번이나 가까운 해외에 다녀오신  선생님, 방학 통째 유럽 여행을 중이신 선생님 소식 등을 양껏 부러워하며 듣는다.

- 쌤은 애들 데리고 어디 안 가?
* 네, 안 갑니다. 못 가요, 돈이 없어서
- 왜 가까운 데라도 다녀오지~


똑같은 패턴의 대화를 아홉 번쯤 했고, 아마 방학이 끝날 때 열 번은 무난히 채울 것다.

요즘 해외여행은 제주도 가는 것보다 저렴하고, 1월이면 수당도 나오고, 부부가 둘 다 방학이니 이보다 좋은 여행의 조건이 어딨냐 싶은 것이다, 사람들은.

나는 뜨겁던 고구마가 팍삭 식을 때까지 여행을 택하지 않은 이유를 말할 수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을 굳이 깨고 싶지 않으므로 심히 고구마 껍질만 깠다. 대신 그 자리에서 말하지 못한 나의 안부는 브런치에 까기(?)로 한다.

 해외여행 없이 아이 셋과 긴 겨울 방학을 보내는 내 마음에 대해서.  


  5인 가족이 되면 방 2개를 잡아야 하므로 숙박비부터 남들 두 배의 비용이 든다.

국내 여행이야 리조트나 펜션 등 대안이 있지만 해외 숙박은 손품을 팔거나 깔끔하게 비용을 지불하거나.

거기에 식비와 교통비까지 더하면 결코 쉽지 않은 지출인데,

무엇보다 아이 셋의 내복과 외출복, 여벌옷에 물총이라도 하나씩 챙기다 보면... 캐리어 쇼핑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 나의 에너지가 벌써 바닥이다.

  그래서 돈도 에너지도 굳이 바닥내지 않고 지금보다 조금만 더 행복해지는 것나의 겨울 방학 계획이다.

피아노 레슨 두 달 차에 접어든 큰아들이 히사이시 조의 영화음악에 빠진 덕분에, 마침 근처 지역에서 하는 히사이시 조 오케스트라 음악회에  다녀왔.

초등 입학을 앞둔 둘째는 자기만의 공간이 있어야 할 것 같아 책상을 보러 다녔고, 그 덕분에 헌 가구를 버리고 가구 배치를 달리하면서 훨씬 넓은 집이 됐다.

사랑스 막내는 말해 뭐 해, 매일 눈 마주치고 웃어주는 나의  비타민이고.

그리고 지금 나는 통영으로 가고 있다. 다가오는 큰아들 생일에 서프라이즈로 선물하기 정말 좋은 케이크를 인티넷에서 발견했는데, 메이드 바이 통영이었다.

택배가 안 된다는 말에 잠깐 고민했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 반이면 갈 만하지 않나?

아들 위한 선물은 못 참지, 환불되지 않는 조건으로 가장 저렴한 리조트를 예약했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

야구를 환장하게 사랑하는 큰아들을 위한 미니 케이크.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나도 남들처럼 비행기를 탈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이 먼저 조를지 모른다, 친구들 다 여행 가는데 우리도 가자고.

그러나 아이들이 좀 더 크기 전에는

나는 이 소소한 행복들을 넘치게 누리며 방학을 탕진할 것이다.



덧. 그리고 이 방학에 글쓰기가 있었다. 비록 많이 쓰진 못했지만, 여느 때보다 잘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의 3할쯤은 글쓰기다.




작가의 이전글 어떤 엄마의 말 못 할 고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