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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Jan 31. 2023

독백하는 마음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시장을 자주 거닐었다. 나는 어렸기에 ‘큰 것은 좋은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철에 맞지 않아 몸뚱이만 큰 생선을 보며 엄마에게 맛있어 보인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저건 지금 철이 아니라 몸집만 크지 맛은 없단다,라며 큰 것과 좋은 것 사이에는 다양한 조건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우스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세상 모든 것에는 각자의 때가 있다는 사실을 시장에서 파는 생선을 통해 배웠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 마음은 속이 찼을까, 덧없이 크기만 한것은 아닐까. 그래서 써 보기로 했다. 머리에만 구르는 생각은 써야만 진정될 것이고, 쓰다 보면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전하지 못할 진심이라면 소중한 마음을 수취인 불명으로 만들지 않고 싶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다짐은 늘 그렇듯 너로부터였다. 그럴 리가 없다 하는 이유는 내가 느끼는 마음이 단순히 ‘호감’과 ‘혼자’가 합쳐져 생긴 단순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혼자가 오래되면 호감은 좀 더 쉽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쉬운 예시를 두자면, 매일같이 보는 거실의 풍경이 심심해 가구나 식물을 사다 눈이 가는 곳 여기저기에 두기도 하고,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이런 부정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4개월쯤 지났을 무렵 특별할 것 없이 부엌 불만 켜두고 책을 읽고 있던 그날도 문득 네 생각이 났다. 당시 읽고 있던 책이 무엇이었고, 어떤 페이지 어느 구절이었는지 기억에 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책이 널 떠올리게 하는 것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 결국, 조금 뒤척이다 나는 ‘또’ 내 머리 한 켠을 내어주었고, 너는 그렇게 한참을 머물다가 나를 재우고서야 떠났다. 그런데 어느 날은 잠에 들어도 네가 있었다. 꿈속에 너는 좀 더 나와 같았다. 생각도 행동도. 그도 그럴 것이 꿈은 무의식의 공간이라 이기적이고 아주 날 것의 내가 그곳에 집을 짓고 주인 행세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에서는 같을 수 없는 우리가 그곳에서만은 같아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같아진다는 것은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 된다는 뜻이다. 어째서 나는 현실에서 내내 부정하는 것을 현실과 너무도 다른 꿈속에서 깨닫는 것일까. 이 이상의 부정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꿈에서 깨어 인정했다. 그리고 내가 날 것이 되어 내 마음대로 너를 생각하는 것이 왜인지 조금은 미안해졌다.  ​


보고 싶은 마음으로는 얼마 안 가 글에서 손을 떼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가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한 시들이 발목을 잡았다. 그 시들은 구절마다 나를 쓰게 했고 너를 떠올리게 했다. 불행인 점은 그런 시들은 세상에 너무 많았고, 다행인 점 또한 그런 시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쓰는 고통’과 ‘너를 떠올리는 기쁨’을 등가교환하며 살고 있다. 잠시 실웃음을 지었다. 나는 지금 쓰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운데, 그건 그만큼이나 너를 떠올리는 게 기쁘다는 뜻이니까. ​


쓰다 보니 세 모금 정도의 커피가 남았다. 이걸 다 마시면 나는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한다. 우선 한 모금은 웃을 때 예쁜 네 미소를 떠올리며 마셨다. 여태 쓰던 것이 약간은 달아진듯하다. 두 번째 한 모금은 이 글이 마치 네 앞에 선 나처럼 횡설수설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읽어보며 마셨다. 이제 마지막 한 모금. 나는 이 한 모금을 마시며 글에서 한 번도 내비치지 않은 말을 용기 내 적어본다.


​떠올린다, 보고 싶다 둘러댔지만 사실 이 마음이 너를 좋아하지 않으면 느낄 수 있는 것일까. 그저, 글의 초입부터 대뜸 네가 좋다고 말하면 읽지도 않을까 봐, 좋다고, 좋아한다고 자주 말하면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까 봐 노심초사하는 마음이었다. 지금의 ‘독백’이, 끝내 ‘고백’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으니까. 언제 올지 모르는 그날 동안 나는 고통스럽게 쓰고 기쁘게 너를 떠올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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