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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월 Sep 13. 2018

우리에게 동화가 필요한 이유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내가 우리 집의 경제 상황을 제대로 알게 된 때는 언제였을까. 그리고 그것에 의해 남의 시선을 신경 쓰기 시작한 때는 언제였을까. 돌이켜보면, 그때가 초등학교 시절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살던 곳이 일단 지방의 작은 도시이기도 했고 거기서도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작은 규모여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애들이 거의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영화 속 지소의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한 것은, 더 이상 사는 동네가 학교 선택의 기준이 되지 않은 중학생이 되고나서부터였다.    

 

영화는 평당(?)에 있는 500만 원짜리 집을 얻으려 고군분투하는 초등학생 지소와 주변 인물들의 상황을 아이의 관점에서 무겁지 않은 분위기로 발랄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다. 이 유쾌하고 발랄한 이야기가 나를 몇 번이나 울렸으니까 말이다.    

 

아빠가 부재한 상황에서 엄마 혼자 생계를 꾸려나가며 가정을 책임지는 상황은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이들이 마음 놓고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없다는 점에서는 <소공녀>가 떠오르며 아이들의 연기는 <우리들>을 보는 듯하다. 이렇듯 이 영화는 총체적 난국의 상황 설정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매력을 우리에게 뽐내고 있다.      


매력덩어리 아역들

애어른과 어른 아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이다움과 어른 다움의 구분은 이 영화에서 무의미하다. 영화 전반적으로 봤을 때 지소는 현실적이며 엄마 정현은 이상적인 면이 강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소는 현실적인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방법을 쓰고 있고 정현은 현실적인 방법으로 생활을 버텨가며 이상적이려 애쓴다. 그렇다 보니 둘은 자주 충돌할 수밖에 없고 관객들은 그 둘 사이의 간극을 몸소 느끼며 어떤 씁쓸함 같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 씁쓸함은 아마 각자의 입장이 너무나도 이해되며 그것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더 아프다.     



아빠의 그림자     


지소는 아빠가 집을 나간 뒤 두 군데에서 아빠의 모습을 발견하는데 첫 번째는 자신이 훔친 개 월리에게서다. 지소는 개의 주인 김혜자에게 개는 집을 스스로 나간 것이 아니라 잠시 길을 잃은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아빠를 떠올린다. 그렇게 우리 아빠도 자신의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길을 떠난 것은 아닌지 자문하며 아빠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떠돌이 대포(최민수)에게서인데, (최민수는 많은 시간 등장하지 않음에도 관객과 지소 모두에게 큰 임팩트를 남긴다) 딸이 자신을 부끄러워할까 봐 딸 앞에 나타나지 못한다는 대포를 보고 지소는 다시 한번 자신의 아빠를 떠올린다. 그리고 지소는 딸도 아마 아빠를 보고 싶어 할 거라며 대포를 위로한다. 그렇게 둘은 서로가 가상의 아빠와 딸이 되어 상처를 보듬어준다. 


     

또한 대포는 벌써부터 경제의 논리에 사로잡혀 공짜라는 게 낯설기만 한 지소에게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물론 어린 지소에게 아빠와 집을 빼앗아 간 ‘돈’은 신 같은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돈으로 되지 않는 게 이 세상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것들은 대체로 엄청 중요한 것일 때가 많다는 것을. 지소 네 옆에서 너를 도와준 그 친구처럼.     


영화는 결국 지소네 가족이 월리 주인인 할머니의 배려로 전세 500만원에 집을 얻는 걸로 마무리된다. 엔딩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동화여서 낯선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엔딩이 현실적이었다면 누군가에겐 너무 잔인해서 떨쳐버리고 싶은 절망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동화가 필요한 거 아닐까. 때로는 500원짜리 동전에 만원이라는 글자를 덧붙여 500만원을 만드는 것이 우리 삶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5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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