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너마저 <졸업>
대학교 합격 발표 후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가 기억난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하숙집을 구하러 학교 앞을 이곳저곳 돌아다녔었다. 그렇게 몇 곳을 둘러보고 나서 하숙집을 계약한 후에 나와 아버지는 버스정류장에 갔다. 기다리던 버스가 오고 아버지는 내게 “잘 살아라” 말씀하시며 악수를 청하였다. 그런데 별 것 아닌 것 같던 그 말과 악수가 그날따라 정말 다르게 느껴졌다. ‘이제 나는 진짜 서울에서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구나’라는 걸 그때서야 실감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아버지도 나와의 악수 후 버스를 타고 가며 눈물을 흘리셨다고 했다. 말하자면 그 악수는 둘이 암묵적으로 맺은 나의 독립선언 합의서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꽤 많은 시간이 흘러 드디어 내 졸업이 다가왔다. 처음엔 살짝 설렜다. 내가 졸업을 한다니. 여기저기 방황하느라 남들보다 훨씬 늦은 나이인 이제야 학교를 벗어난다니. 하루빨리 졸업사진을 찍고 싶었다. 나를 괴롭혔던 학교라는 공간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학교는 졸업사진을 찍으려는 학생들과 가족들로 붐볐다. 그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내 친구들을 만나니 기분이 묘했다. 어색했던 첫 만남과 오리엔테이션, 수업시간에 매번 졸던 나를 깨워주던 친구들,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계절학기, 시험이 끝난 후 가졌던 술자리, 경주로 놀러 간 졸업여행 등 여러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뭔가 시원섭섭함과 동시에 우리가 더 끈끈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족들을 보니 고마웠다. 내 졸업 사진을 위해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온 것도 모자라서 내게 깜짝 선물까지 줬다. 좋아하는 영화 대사 좀 알려달라며, 자신도 그런 거 하나쯤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동생이 물어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하다가도 ‘그래, 알고 있으면 좋긴 하지’ 싶어 보내준 영화 대사는 내 졸업 축하 풍선에 그대로 쓰여있었다. 두 동생들보다 늦게 졸업을 하는 못난 첫째의 졸업을 축하하러 와주신 부모님께 죄송하기도 했다.
다시 시간을 돌려서 내가 고등학교 졸업을 할 때,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많은 공감을 했었다. 그때는 그 노래가 이제 성인이 되는 학생들을 위한 노래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듣고 보니 졸업하는 대학생들을 위한 노래 같이 느껴진다. 약 20여 년간 학생이라는 신분을 유지하고 살다가 이제 그 타이틀이 없어져버리니 퍽 난감해져 버린 사람들을 위한 노래. 모든 핑계이자 방패가 되어주었던 ‘학생’이라는 보호막이 없어지고 나서야 내가 졸업을 했구나라고 새삼 실감하게 되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노래.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라는 <졸업>의 가사는 대학을 졸업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학교를 벗어나 진짜 사회로 나가는 모든 친구들이여, 이 미친 세상에서 어디에 있더라도 꼭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