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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칠월 Aug 02. 2018

인랑은 왜 실패했나

영화 <인랑>

*이 글은 브런치 무비 패스 제공한 시사회에서 영화를 관람한 후에 작성되었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몇 개월 전부터 인랑의 개봉 소식이 곳곳에서 들리고 영화의 예고편까지 공개되었을 때도 영화가 이렇게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2029년의 한반도라는 소재와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이라는 배우와 무엇보다, 감독이 김지운이었으니까 말이다. 첫 시사회가 나오고 나서 생각보다 혹평인 반응들을 보고도 별로 의심하지 않았다. 원래 나는 영화를 대체로 다 볼만하다고 느끼는 편이고 이 영화도 그 범주 안에 들어가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난 ‘내가 무엇을 본거지?’라는 근본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물주먹이 된 영화     


영화는 2029년의 한반도라는 소재와 강동원, 한효주, 정우성이라는 배우와 감독 김지운을 다 살리지 못했다. 일단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에 너무 많은 설명을,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는 너무 적은 설명을 할애했다. 영화의 기본 동력이었던 공안부의 스캔들과 이윤희의 과거는 무슨 내용인지 우리가(혹은 나만)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인물들이 하는 행동의 동기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고, 영화 초반 배경 설명을 위한 내레이션이나 중간에 나오는 빨간 망토 동화는 좀 늘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정치 공작, 파벌 싸움 등의 스토리는 힘을 잃고 배우들의 연기도 우리에게 제대로 된 임팩트를 주지 못했다. 아마 대부분의 관객들은 “너네들끼리 왜 이렇게 심각한 거야?”라는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최민호의 연기     


가뜩이나 영화가 종잡을 수 없이 이상한 곳으로 튀는 암울한 상황에서 최민호의 등장은 그나마 무게중심을 잡고 있던 배우들의 톤마저 날려버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딱히 긴말이 필요 없을 듯하다.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최민호의 연기 덕분에 ‘김무열이 연기를 잘하는구나’라고 새삼 느끼게 되었다.     


...


인랑이 임중경? 그래서?     


영화는 후반부에 가서 임중경이 인랑이라는 것이 마치 큰 반전이었던 것처럼 나오고 극 중 인물들도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어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나는 그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아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임중경이 인랑이라는 사실이 충격적이려면 첫째로 인랑이 특기대 내에 있지만 특기대와는 성격이 다른 암살집단이며, 그것을 적어도 말이 아닌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그 존재감을 각인시켰어야 하고 둘째로 인랑이 임중경과는 다르다는 믿음을 차곡차곡 심어줬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영화의 예고편과 포스터를 그렇게 만들었으면 안 되었다.

영화는 허준호의 입을 빌려 인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관객에게 잠깐 알려주고 넘어갈 뿐이다. 심지어 인랑이 임중경과 다른 사람이라는 상황은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더구나 영화의 예고편은 '늑대로 불린 인간병기'라는 글자 다음에 임중경이 마스크를 쓴 모습을 보여주고 '인랑'이라는 영화 타이틀이 나온다. 포스터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임중경이 인랑이 아니라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이런 문제들이 발생한 이유는 애초에 관객의 입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그 영화의 원작을 모르며 배경지식이 없기 때문에 영화는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동안 우리를 제대로 설득시켜야 한다. 어느 부분은 퉁치고 넘어가도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인랑은 그 사이의 조율에 실패했다.


누가봐도 강동원이 인랑

이 영화가 김지운 감독 커리어의 내리막길 시작점이 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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