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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야 Nov 21. 2023

인생은 별 것 없지만 아직 날 잘 몰라

오랜만에 할머니와 긴 통화를 했다. 지금까지도 부모가 된 자식들을 걱정하신다. 나에게도 연고가 없는 서울에 혼자 지내기에 '항상 조심해서 댕겨라.'라는 말을 하신다. 문득 나도 모르게 할머니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 이제 자식들도 다 컸고 각자 잘하고 있으니, 이제는 신경 쓰지 말고 할머니 하고 싶은 거 해. 
할머니: 그래, 묵고 싶은 거 묵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이제 내만 신경 쓸 거다. 
나: 하고 싶은 거 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묵고 싶은 거 다 묵고 해.
할머니: 인생 별거 없다. 아등바등해 봤자 소용없고 즐기며 살아라.


여든이 넘은 할머니가 되어서야 비로소 본인이 젤 중요한 걸 깨달았던 걸까? 여전히 마음 한편에는 자식들이 잘 먹고 잘 지내는지 걱정하실 테지만 지금의 나이가 되어서야 보이는 게 있었을까? 


나는 할머니에게 하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하라고 이야기하면서, 정작 나는 그렇지 못하고 있다. 내가 무얼 할 때 즐거워하는지, 무얼 제일 좋아하는지 아직까지 잘 모른다. 내가 나를 잘 모른다. 여럿 책을 읽어봐도 내가 나를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방법을 아직 모르겠다. 놀아본 사람이 노는 법을 알고, 공부를 해본 사람이 공부법을 안다고. 나는 아직 나와 어떻게 잘 놀지도 모르겠고, 내 마음을 잘 들여보려 노력하지도 않았나 보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달라진 것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아주 조금 해방되었다는 것? 사람들은 정작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사는 곳을 여러 번 말해도 어디 사냐고 묻는 지인, 무얼 하는지 여럿 말해도 반복해서 묻는 등.. 아! 정말 나에게 관심이 없었구나를 느끼는 요즘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도 되지 않을까? 


다가오는 2024년의 목표라면 '잘 쉬는 것'이다. 잘 쉬고 잘 즐길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려한다. 무언가를 내놓아야 무언가가 내 손에 쥐어진다는 것을 잘 알기에 오랫동안 한 하나의 일을 그만둔다. 전혀 아쉽지 않다. 오히려 이 시간에 내가 무얼 할지 생각하고 계획한다는 것이 더 설렌다. 지금은 그렇다. 이 시간들을 나를 잘 가꾸고 돌보는 시간에 쓴다면, 천천히 조금씩 나를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나와 잘 지낼 수 있는 법을 천천히 경험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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