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살리는 글쓰기

by 쓰야

<이오덕의 글쓰기>를 한창 읽는 중이다. 나는 늘 글쓰기에 관한 책에 눈길이 간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글을 잘 쓰는 법에 대해 소개하는 책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내가 다시 어린이가 되어 글을 써보자고? 자연스레 나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학교에서 현장학습체험을 가서 돗자리를 펴두고 친구들과 깔깔거리기 바쁘다. 그냥 그렇게만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학교에서는 꼭 무언가를 시킨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짓기를 하자고 말이다. 그럼 나는 늘 후자를 택했다. 그림에는 영 소질이 없고 흥미도 없었다. 부랴부랴 원고지를 꺼내 눈에 보이는 것들을 써 내려간다.

'화창한 날씨, 지저귀는 새들 소리, 그늘진 나무 아래에서 눈에 보이고 경험했던 것들을... '

그만 쓰고 싶다가도 원고지를 가득 채운다. 분량을 채우기 바빴을까? 생각나고 보이는 대로 쓰기 바빴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어땠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글쓰기에 거리낌이 없었던 듯하다. 다들 그림 그리기를 택하는 것에 비해 나는 글쓰기를 택했던 아이였으니 말이다. 초등학교 때는 글짓기 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도 했다. 그랬던 시절이 있었지.. 점점 커가다 보니 정답이 있는 것을 찾아가기 바쁜 삶을 살게 되었다. 오지선다형 선택지에서 20%의 확률로 정답을 찾아내야만 했고, 정답을 많이 찾아내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교육을 받아왔다. 그렇게 답이 없는 주관식 문항은 점점 낯설어진다. 어디 인생에 정답이 있으랴? 주관식 인생에서 답이 없는 정답을 찾아가기에 너무 아등바등 살아온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p.54 그 아이들은 왜 자기의 이야기를 글로 못 썼는가?

내 이야기를 서른이 넘어서야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피하고 싶은 과거의 모습들과도 마주해야만 했다. 마주하다 보니 지워버리고 싶었던 생각과 쓸모없는 경험들이 모여 쓸모 있는 나만의 글감이 되어주고 있다. 이오덕 선생님은 '가치 있는 글을 쓰자'라고 말한다. 가치 있는 글을 쓰게 하는 일은 곧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하는 일이라고.


나는 지금까지 가치 있는 글을 썼던 걸까? 한동안 책장 넘기는 것을 일처럼 여겼고, 글 쓰는 것을 의무감으로 썼다. 왜 즐기지 못하고 이마저 일로서 받아들이는 나를 가끔은 한탄하면서도 그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다 보니 오히려 또 나에게 자양분이 되어준다. 그렇게 나는 올해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정식으로 출간했다. 그전엔 자비출판으로 출간했지만, 이번엔 출판사와 함께 쓴 기획출판이었다. 원고를 마감 기한 내에 쓰고 나면 출판사는 교정본을 곧장 보내온다. '삭제, 자연스러운 어미 수정, 문단 교체 등...' 그렇게 수차례 반복하다 보니 원고를 쓰는 과정은 곧 선생님에게 일기 검사를 받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그렇게 책이 출간이 되면 일기장 한 권을 가득 채운 느낌마저 든다.


p.68 어린이들의 삶과 말과 마음을 가꾸는 일은 교육과 어린이문학에 공통되는 목표다. 이 목표를 위해 어른도 글을 쓰고 어린이도 글을 쓴다. 그러나 어른은 어린이들에게 주기 위해 그들의 생각이 담긴 글을 쓰고, 어린이는 어른의 가르침을 받지만 그 자신의 삶을 가꾸는 글을 쓴다. 그러기에 어른의 글과 어린이 글은 다르고, 달라야 하는 것이다.

글쓰기를 가르쳐보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나는 단지 내 글에 솔직해지고, 당당해지고 싶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은 없다. 흰 백지에 까만 글을 써 내려가는 일이 내 삶을 가꾸는 것이라고. 내면을 잘 가꾸기 위해 필연적인 과정이지만, 그럼에도 마주해야만 한다. 내가 좀 더 솔직해지고 용기가 생긴다면 그런 여유가 생긴다면 앞으로 마주할 아이들의 삶과 마음을 글로 잘 가꿔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한동안 글쓰기를 멀리했던 이 마음이 게으름인지 두려움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잘 가꿔보자고. 천천히.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취향을 공유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