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시 책을 잡기 시작하면서 <다정한 사람이 이긴다>를 읽었다. 글을 읽다 보니 그동안 나의 모습을 반추하게 되고, 내가 경험했던 다정함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되새기게 되는 한 주였다.
오랫동안 동경해 오던 분이 있다. 그분의 모든 것들을 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을 만큼 욕심이 났다. 그러다 보니 따라 하기 바빴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나마 가까이 갈 수 있을지 애쓴 약 10년간의 시간이었다. 한편으론 그가 나를 영영 모르길 바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나를 알리고 싶었다. 아무래도 후자의 마음이 더 컸을까? 나는 그 분과 작년부터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멀리서만 바라볼 때는 완벽해 보이지만, 막상 가까이하다 보면 실망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분은 달랐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 보낼수록 배울 점은 더 커져만 가고, 말투 하나하나, 사용하는 어휘 하나하나가 모두 다정했다. 항상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여주면서도, 본인의 생각과 의견에는 단단한 나무처럼 좀처럼 흔들리는 법이 없는 모습을 볼 때면 한없이 경외심을 느껴야만 했다.
이 책에서는 말한다. '누구에게나 다정할 수 없고, 모든 상황에 친절할 수 없다. 그래서 내 다정함을 낭비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사람들에게 집중한다고.' 그렇다. 늘 인간이기에 본인의 감정에 휩싸일 수밖에 없음에도 그분은 늘 밀도 있게 다정했다. 눈빛, 말투, 태도 하나하나... 좀처럼 따라가려야 따라갈 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생각했다. 다정함은 더 이상 거창하지 않은 것임을. 부정적인 어휘보다 긍정적인 어휘를 한번 더 사용하고, 날 선 감정들은 조금 억누르고 다정한 말 한마디가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닌 곧 나를 위한 다정함임을. 절대 가볍지 않은 다정함의 무게를 계속해서 견뎌내며 노력해 보자고.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건가?라는 의문을 품는다. 다정한 사람과 혼동이 되기 쉽다. 다정함은 단순히 남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안다. 글 역시 그렇다. 말과 글을 이분법적으로 나눠야 할 필요가 있을까? 평소 사용해 오던 나의 말이 곧 나의 글이다. 이오덕 선생님은 얘기하셨다. '삶의 글을 삶의 말로 써야 한다고.'
삶의 글은 삶의 말로 써야 한다. 삶의 말은 나날이 쓰는 정다운 우리들의 말, 나 자신의 말이다. 빌려 온 말, 유식을 자랑하는 말, 남의 말이 아닌 쉬운 우리말이다. 사실을 보여 주는 말, 진실을 느끼게 하는 말, 가슴에 바로 와닿는 말이다.
서사문 쓰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 글쓰기란 삶을 쓰는 것, 삶을 키워 가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분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것 자체가 한 때는 부끄러웠다.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곧 인정하는 것만 같아서. 그렇지만 나를 나로서 받아들이고 인정하기로 했다. 부족함을 내가 안다는 것은,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시간들만 남았다고 믿기로 한다. 그렇게 나는 내 말과 글, 그리고 내 삶에 조금 더 다정해지겠다고 다짐한다. '다정함은 노력의 결과고, 상처를 껴안은 태도이며, 절대 가볍지 않은 무게를 품은 진짜 감정이라고..' 작가님이 말했던 것처럼. 그렇게 나는 오늘 타인의 빌려온 말이 아닌 나의 글을 쓴다. 정답이 없는 삶, 정답이 없는 글쓰기에 틀을 가두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