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도 참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어찌 보면 오히려 굴곡이 많은 삶이었다.
이혼가정에서 자라온 데다 대가족으로 친가 식구들과 살면서 충분하고 올바른 사랑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이제 생각해 보니 참 우울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며 변화된 삶을 살고, 조금은 힘들었지만 대학생활과 직장생활까지. 그리고 연애와 결혼까지 잘 견뎌내며 인생의 과업은 나름 성실히 해냈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그때 그 상태가 우울과 불안이었음을 아는 것이지 그때는 내가 아픈 줄 몰랐다. 그냥 조금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을 뿐이었다.
내가 아프구나를 인지하기 시작한 건 우울과 불안. 공황장애 증상이 한 번에 드러나면서부터였다.
그 계기는 출산과 육아였다. 그래서 이 아픔의 이야기에 출산과 육아가 빠질 수 없다.
출산 이후 불안증세가 심해져 전에 없던 오염 강박 증상까지 생겼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남들처럼 지나가는 산후우울이라고 생각했다. 감기처럼 지나갈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첫째 출산 후 조리원에서는 밤이 되면 숨이 안 쉬어지는 증상과 저혈압이었던 내가 고혈압 증상이 나타나고, 실신하기 직전에 상황까지 왔었다. 눈물은 시도 때도 없이 났다. 연말시상식을 봐도 울고 노래를 들어도 눈물이 흘렀다.
뭔가 이상했다.
이런 상황이 왔지만, 다시 생각했다. '지나가겠지. 그냥 잠시 힘든 것뿐이야. 견뎌낼 수 있어'.
단순히 출산의 경험이 나에게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생각했다.
유도분만을 하다 진통을 겪고 결국엔 제왕절개를 했던 그 경험. 회복기에도 계속해서 망가지는 내 몸. 안 그래도 어린 나이 출산에, 겪기 싫었던 그 모든 출산의 과정이 나를 잠시 힘들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숨이 안 쉬어지고 고혈압이 오는 증상은 조리원 외출과 동시에 사라져 괜찮아진 줄 알았다.
불안과 두려움은 집에 돌아오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너무 겁이 났다. 이 아이를 내가 어떻게 키우지. 너무 막막했다.
그 당시 내 나이는 26살이었다.
조리원에서 돌아온 첫날은 아기침대가 있는 방 안에서 나오질 못했다. 한시도 떨어지면 안 될 것 같았다. 남편이 한 번씩 외출을 권했지만 아이가 돌이 되기까지 아이를 두고 외출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외출을 하지 않았다.
오염강박까지 있었던 나는 그냥 외출을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이와 집에만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어떻게 그 시간을 견뎠는지 모르겠다.
특히, 새벽수유.
아이는 정말 예뻤지만, 그 시간은 정말 힘들었다. 이전에 힘든 것에 대해 힘들다고 표현도 못하던 내가 새벽수유에 대해서는 정말 힘들다고 얘기했다.
회사를 다녀야 하는 남편의 수면시간에 영향이 갈까 걱정이 되어 새벽수유를 혼자 감내하겠다 말하고 잠시 각방을 썼었다.
혼자 그 긴 새벽을 보냈다. 재우고 먹이고 소화시키고 가 반복되었다. 나는 누가 잠을 자게 해 주나 정말 미칠 것 같은 날도 있었다. 게다가 첫째는 예민해서 그 당시 원더윅스 기간에는 3시간 동안 소리를 지르면 내리 운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밖을 나가면 순둥이가 되어버리는 내 아가를 보며 사람들은 얘기했다. '애가 순하네요' 그럼 나는 그렇게 얘기했다.
' 맞아요 애가 순해요'
나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힘듦이 엄한 데서 터졌다. 남편과 싸움이 잦아진 것이다. 별일이 아닌데 서운하고 화가 났다. 너무 예민해 남편과 많이 싸웠다.
도저히 안 되겠어 복직을 했다.
하지만 회사도 내 맘처럼 평탄하데 흘러가지 않았고, 결국 퇴사한 나는, 좀 더 우울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나를 아프게 하는 시간들이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