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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친구들과의 철렵

철없던 소년들이 다시 우리 안에서 깨어났다.

by 이쁜이 아빠

끝도 보이지 않게 이어지는 장마와 폭염.


비가 내릴 듯 말 듯한 흐린 하늘 아래,
토요일 아침.
고향 초등학교 친구들과의 철렵 약속은 그 흐린 날씨마저 설레게 만들었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똑같은 방식으로 시작된다.
반가움 대신, 장난스럽게 던지는 욕설 한마디.
그 욕설은 상처가 아니라 웃음의 방아쇠가 되어, 우리의 대화를 풀어내는 비밀스러운 주문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건, 바로 이런 유쾌한 습관일 것이다.

마을회관에 모여, 우리는 농협 마트와 군마트를 오가며 오늘 하루를 채워줄 재료들을 장만했다.

오늘의 큰일은 옻닭이었다.
은수가 준비한 토종닭은 무려 세 마리, 그것도 3kg이 넘는 덩치였다.

그리고 석화가 들고 온 옻나무.
식당에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굵고 진한 옻나무였다.
솥단지를 걸고, 옻나무와 닭, 파와 양파, 마늘을 차례차례 넣는 순간, 비로소 오래 잊고 있던 ‘철렵의 맛’이 시작되었다.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며 솥을 달구는 동안, 우리는 개울로 내려갔다.
장마로 불어난 물살은 거칠었지만,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서로 물을 튀기고, 물살에 몸을 맡겼다.

바위 위에 나란히 앉아 웃음을 터뜨리던 순간, 세월의 무게는 온데간데없고, 철없던 소년들이 다시 우리 안에서 깨어났다.

다시 돌아와 보니, 솥 안에서는 닭이 여전히 질긴 생명력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두 시간을 삶아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그 단단함에, 왠지 모를 든든함이 배어 있었다.
옻 향이 은근히 스며든 국물은 벌써 진득한 빛을 띠었고, 솥뚜껑 사이로 피어오르는 김은 친구들의 얼굴을 금세 환하게 물들였다.

술이 빠지면 모임이 아니다.
얼음을 가득 채운 바케스 속에서 차갑게 잠든 소주와 맥주.
종이컵에 따라 건배를 외치며 부딪히는 소리는, 그 자체로 음악이었고 우정의 증명이었다.
“우리 우정 오래 가자!”
짧고 굵은 외침 속에, 몇십 년을 함께 버텨온 믿음이 담겨 있었다.

마침내 삶아낸 닭이 상 위에 올랐다.
큼직하게 잘려진 살점은 푸짐했고, 옻향은 은은하게 코끝을 간질였다.
그 맛을 입 안에 머금자, 기다림의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식탁 한편, 다래넝쿨이 초록빛으로 늘어져 있었다.
높은 산이 아닌 평지에서 만난 다래였지만, 그 모습이 어쩐지 정겹고 아련했다.
마치 우리 우정이 그렇듯, 특별하지 않아도 오래도록 곁에 머물러주는 존재 같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수십 년.
머리칼은 희끗해지고 세상은 우리를 바쁘게 몰아붙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다시 소년이었다.
흙냄새, 불냄새, 술기운, 그리고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장마철의 눅눅함을 밀어냈다.



지루한 비가 이어지는 여름날,
친구들과 함께한 철렵은, 세상 그 어떤 호사로운 여행보다도 값지고 따뜻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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