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무엇을 찾고 싶다

게임 시나리오 작가의 꿈

by 틈새의 땅

얼마 전엔 AMC에 가서 브래드 피트의 F1 아이맥스 영화를 보았다. 아둥바둥 먹고 사느라 바쁘기도 했고 코로나로 세계 모든 사람들이 몇 년 일상이 묶였던 탓에 거의 10년 만에 영화관엘 간 것 같다. 레이싱 겜, 레이싱 영화 무지 좋아해 F1은 영화관에서 봐야 제 맛이라는 말에 넘어가(?) 영화를 보려고 휴가까지 냈다. 레이싱 영화의 스토리 라인이 대부분 그렇듯 F1 역시 타고난 레이서 소니역 브래드 피트가 극한의 상황을 이기고 우승한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실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쉘비 맷 데몬 주연의 Ford v Ferrari (2019)의 스토리가 더 와닿았다. 속도를 초월한 그 어느 지점 그 순간 자신의 존재가 온전히 느껴지기에 훨훨 난다라는 어쩌구저쩌구 소니의 클립은 포드 대 페라리를 조금 베꼈다는 느낌이다. 레이싱 영화에서는 단어 배열을 바꾸고라도 꼭 나와줘야 하는 클립인 것 같기도 했다. 식상하긴 하지만 영화 속의 레이서들처럼 나도 내가 나로서 내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절대적 실체인 그 무엇을 늘 갈망했다는 것이다.


어쨋든 그렇게 오랜만에 낯선 사람들 사이에 끼어 영화를 보니 나름대로 새롭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옆에 앉은 한 xx 부부 아님 연인 때문에 좀 짜증이 났다. 그들의 안하무인적 행동 때문이었는데 그 커플이 우리 옆에 앉는 순간부터 왠지 뭔가가 불안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불안한 예감은 왜 그렇게도 늘 적중하는지. 앉자마자 관람석 앞 조그만 철 펜스에 그 굵은 다리를 쩍 벌리며 올려놓는다. 거기다 영화상영 내내 팝콘을 어그적- 아사사삭- 끊임없이 씹어 먹고 자기 허벅지 크기만 한 콜라 컵을 들어갔다 나갔다 핑퐁 리필해 가며 쭈르루륵 카- 빨아댄다. 웃기지도 않은 장면에서 옆사람인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큰소리로 웃고 떠든다. 한마디 하고 싶기도 했지만 사실 총 맞아 죽을까 봐 무서워 아무 말 못 했다. 성질에 안 맞으면 아무 데서나 총갈겨 대는 게 미국의 현실이다 보니 영화 보러 왔다 괜히 개죽음당할 일 있나 하는 생각에 쩝..개쑤x.. 그러고 말았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코스코에 들려 장을 보고 저녁으로 먹을 타코를 사가지고 왔다. 배고팠던 터라 타코를 후루륵 흡입하고 얼른 PC를 켜고 데스티니에 로긴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데스티니 2 마지막 DLC가 될지도 모르는 The Edge of Fate가 출시된 날이었기 때문이다. 시작 로고 음악이 데스티니 1 때로 회귀해 아련한 향수가 느껴졌다. 일단 첫 번째 인상은 헉-아이코라는 나이를 거꾸로 먹는가 보다. 전시즌 Final Shape에서 보다 10년은 젊어졌다. 나도 나이를 거꾸로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가. 아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건 어떤 형태로던 과거로 되돌아간다는 것이고 과거로 되돌아간다는 건 수고스런 이 삶을 영원히 반복하며 살아야 하는 비극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게임 속 악당들처럼 무모하기 그지없는 영원이나 무한을 꿈꾸지 말고 지금 주어진 이 순간만을 살자. 그렇게 플레이를 하다 보니 지난 십여 년간 데스트니를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그 무엇이 울컥 올라왔다. 지구의 수호자 워록으로 때로는 타이탄이나 헌터가 되어 이 행성 저 행성을 획획 날아다니며 사바툰을 몰아내고 벡스나 에라미스를 처치해 악으로부터 지구를 지켰다. 케이디의 죽음이 가슴 저려 통곡했고 열두 명의 수호자와 스트라이크를 뛰며 악과 어둠의 진수 위트니스를 물리쳤을 때의 그 뿌듯함이란. 아이러니하게도 총칼질 잘하는 게임속의 내가 너무나 멋져서 잃었던 자신감이 되돌아 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또 다른 게임에서는 고대시대 무적의 전사가 되어 이 세상을 구하고 또 다른 가상의 세계에서는 F1의 소니처럼 최고의 레이서가 되기도 했다. 끊임없이 넘어지고 깨졌던 현실의 나는 작고 초라했지만 게임 속의 나는 늘 이 세상을 어둠과 악에서 구출하는 영웅이었다. 그래, 이젠 먹고사는 데 그만 집착하고 초라한 나를 영웅으로 만들어주는 '그 무엇'을 겜 시나리오로 써보자. 혼자만의 원맨쇼로 끝날지언정 인생 2막 늦은 나이에 그렇게 나 홀로 독자인 소설과 게임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아주 옛날옛적부터 이 땅 한반도를 구해낸 영웅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언젠가는, 그립기만 한 고향 땅의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며 어둠에서 신음하는 슬픈 영혼들을 구하는 한반도의 수호자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