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 협박?
미 상원에서 내년 예산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부가 또 셧다운(정부 기능 마비) 될 위기다. 거의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라 그러려니 하면서도 듣기 좋은 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매번 이러니 좀 지겹고 신물 난다. 뭔들 안 그러냐만은 이번엔 좀 거세고 강압적이다. 무급 강제휴가고 뭐고 이번엔 아예 다 짤라버리겠다고 으름장이다. 따지고 보면 지들도 전부 공무원이건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피라미 공무원들하고 무슨 철천지 웬수가 졌는지 연초부터 해고의 칼날을 들이대며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다가 일런인가 먼가와의 막장 개싸움을 끝으로 잠잠해지는 가 싶었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엊그제는 또 같이 일하는 개4xx 동료와의 갈등으로 보스까지 나서서 나에게 붉으락벌그락 거리는 바람에 나 홀로 고독한 쌈닭이 되어 한바탕 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할래도 은근한 차별과 무시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 어쩔 수가 없었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말할 수 있는 이민자들에게야 상관없는 얘기겠지만 나같이 죽어라 열심히 해도 내 말처럼 영어를 말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그 개똥 같은 영어 때문에 겪는 서러움이 만만치 않다. 그는 대놓고 언어의 한계가 있어 소통이 잘 안 된다느니 네가 하는 말은 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징징대며 사람의 심장을 바닥까지 긁어 까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갖 이민을 와서는 내가 더 열심히 잘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억울해도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숙였다. 왜 그렇게도 어리버리 순진했는지. 이젠 그런 인간들쯤이야 면역(?)이 돼서 가볍게 내칠 수 있지만 걱정되는 건 어쩌다 보니 알게 모르게 거국적 막가파식이 시너지를 이뤄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요즘은 뭘 그렇게 대단히 잘 먹고살겠다고 익숙한 것 다정한 것 다 떨쳐버리고 이 나라에 왔는지 한번 생각해 봤다. 세계 제일 부자의 나라. 나만 열심히 하면 먹고사는데 지장 없는 나라. 나같이 보잘것없고 가진 것 없는 사람도 무시당하지 않는 평등의 나라. 물려받은 유산 없어도 열심히만 일하면 내 힘으로 집하나 살 수 있는 나라. 정신머리 제대로 박힌 정치인이 더 많은 민주주의의 나라. 지방대학 나왔어도 차별받지 않고 원하는 직장하나 찾을 수 있는 나라 등등. 손가락을 꼽아 세어보니 개수가 꽤 많은데 뒤집어 말하면 그 수만큼이나 내 처지에 대한 열등감이 많았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다. 가난했던 환경에 악을 써가며 지방대학 하나 덜렁 나왔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집은커녕 전세금조차 마련하지 못할 것 같았던 현실이 무척 암담했었다. 어쨌거나 대충 그런 환상을 꿈꾸며 야심 차게 왔던 듯한 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나. 되돌아보니 넘 무식했기에 참 용감했다. 정말 이민가방 달랑 하나 매고 단돈 몇백만 원 들고 어린 자식 토닥이며 상경 아니 상미를 했으니 말이다. 엄밀히 따지면 아직은 은행 소유지만 그래도 자식 공부시키고 집한칸 마련했으니 아메리칸드림은 이룬 걸까. 아님 한국에서도 이만큼 노력했다면 거뜬히 이룰 수 있었던 그저 평범한 코리안드림이었을까. 문득 중학교 때 숙제로 읽었던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먹고 산다는 게 뭔지 한국살이나 미국살이나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몹시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다. 인간 역사의 시작 이후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이어져 온 비극이겠지만 모두에게 평등하고 자유스러운 이상적인 나라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건 우리 의식 속 저 깊은 심연 속에서나 존재하는 환상 같은 낙원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