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와 목적

by 틈새의 땅

검색 엔진의 대표로 불리는 구글(google)사 이름의 유래가 된 구골(googol)이라는 숫자가 있다고 한다. 숫자 1 다음에 0이 100개 붙은 수를 말한다고 하는데 1 다음에 1 구골 개 붙은 수를 칭하는 수는 구골플렉스(googolplex)라고 한다. 한 사람이 ‘나’라는 정체성을 부여받고 이 세상에 태어날 확률은 1 다음에 1 구골플렉스보다 훨씬 더 많은 0이 붙은 수를 1로 나눈 값에 해당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하기 힘든 크기의 숫자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확률로 이 지구에 태어나서 지금 내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 레이 커즈와일의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에서 말하는 ‘나’라는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 확률을 역학적으로 계산해 본 결과다. 그의 말대로 지금 내가 여기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참으로 경이로운 기적이 아닐 수가 없다.


그렇게 기적적인 확률로 이 세상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태어나 산다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영원히 살 것처럼 하루하루 되는 대로 시간을 소비한다. 책에서는 물론 2040년 전후로 예측되는 특이점을 기점으로 인간 수명은 나노 생명공학의 발달로 120살을 넘어 궁극에는 1000살까지도 가능하기 때문에 본인이 원한다면 클라우드에 기억을 저장해 놓고 원하는 나이만큼 생명을 연장해 살 수 있다고 한다. 현재로선 생뚱맞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저자가 워낙 영향력 있는 발명가이자 미래학자일 뿐 아니라 실제로 가파르게 달려가는 AI를 비롯 생명공학 발달 추세를 보면 그 말이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천 살은 말할 것도 없고 백 살까지 사는 것조차도 너무 지루하고 끔찍할 것 같다. 기술의 힘으로 생명을 연장하지 말고 그냥 유기적 신체가 제 기능을 다할 만큼 나이를 먹으면 이 승에서 살았던 모든 삶의 기억이 초기화되고 영혼은 한점 무(無)로 되돌아가 우주의 에너지로 환원되는 자연스런 과정이 좋을 것 같다. 아직도 오춘기의 방황이 끝나지 않아서인지 이렇게 우연히 태어나 살아가는 게 참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던 과거 내 삶의 모든 행위들이 허무하게 느껴져서다. 살아가면서 제 나이에 맞게 맞닥뜨리게 되는 어떤 정서적 단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근본적 외로움과 고독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한편으론 과거 열망했던 삶의 가치와 목적이 의미를 잃었기 때문인 것 같다. 과거엔 나의 능력이나 내가 하는 일 같은 것들을 늘 경제적 가치로 환산했고 그게 곧 내가 살아야 하는 궁극적 이유였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 적어도 뒤지지는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연연했기에 사소한 것들에 집착하며 에너지를 소비했다. 되돌아보니 그놈의 남의 시선이나 평가가 무엇이었길래 하며 억울해하다가도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 한편으론 지나간 그 모든 삶의 과정들 또한 귀중하고 감사하다. 먹고사는 걸 해결해 주었기 때문인진 몰라도 내가 하는 일을 천직이라고 여겼고 아니 천직이라고 착각해 온 영혼을 갈아 넣었다. 요즘은 그렇게 좋았던 일도 재미가 없고 이젠 견디기 힘들 만큼 싫어진다면 언제든 그만두겠다는 마음이다.


그래서일까. 태어났으니 그냥 사는 거지 머 대단한 목적이 있겠냐 하다가도 이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통해 남은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을 주절주절 써 내려가는 글쓰기인 것 같기도 하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평생 일을 하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뭔가 재미있는 디지털 창작물을 만들고 싶어 이것저것 시도를 해보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냥 쓰고 뭔가를 만들 때 시간을 잊고 몰입하게 되며 누가 알아주진 않더라도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게 되는 그 순간엔 작은 위안을 얻는다. 어쨌거나 별 탈 없이 흔히 말하는 평균 수명까지 살게 된다면 앞으로 남은 삼십여 년의 시간은 과거처럼 외부의 시선에 휘둘려 서두르거나 허둥대지 않고 원래의 나를 알아가며 살고 싶다. 가끔씩은 알 수 없는 허무와 공허로 흔들릴지언정 주어진 시간의 유한성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지금 여기 이렇게 존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인간이라는 유기적 생명체가 소멸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듯 영원 같은 우주 또한 언젠가 그 수명을 다하고 소멸해 새로운 운명의 주기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궁극적인 삶의 의미와 목적이라는 게 각자의 견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엔 서로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화해과 평화를 지향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젠 남아있는 시간들이 어떤 경로를 거치던 인간 내면의 선한 의지를 항상 기억하고 싶다. 거창한 인류애적 사랑의 실천까지는 아닐지라도 그런 마음으로 이 세상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나름 내가 이 세상을 왔다가는 목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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