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죽을 것인가

by 틈새의 땅

며칠 전 대학을 갖 졸업하고 취직한 첫 직장동료였기도 30년 지기 친구이기도 한 친구와 통화를 했다. 따지고 보면 한참 선배 격이긴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이라는 경계가 무의미해져 동년배처럼 서로 편하게 지내는 사이다. 같은 이민자 신분으로 이방인의 고단함과 외로움 같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사이이기에 각별하다. 물론 지 x 같았던 내 성격 때문에 삐죽빼죽했던 적도 있어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린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준 친구가 감사하다. 그 친구를 통해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실은 많이 배울 수 있었기에 더 고맙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성질에 안 맞으면 가족이건 친구건 다 내쳐버리고 저 혼자만 잘났다고 독불장군처럼 살았던 내게 유일하게 남은 친구이기도 하다. 친구는 지금 한국에 파견을 나가 근무하고 있는데 이번 주 테네시에 무슨 컨퍼런스가 있어 가족도 볼 겸 미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내가 사는 이곳까지 들릴 시간은 없다고 해 전화통화만 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 말에 대뜸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더니 도대체 어디가 얼마나 아픈 거냐고 걱정이다. 죽을병에 걸려 그런 건 아니고 인젠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도록 죽음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어이없다는 듯 한참을 웃는다. 너무 앞서 설레발이 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진짜로 언젠가 불쑥 손을 내밀지도 모를 죽음을 위해 오랫동안 처박아두었던 집안의 물건들, 생각 없이 여기저기 저장해 두었던 디지털 자료나 사진들을 정리하고 있다. 미리 준비해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에서지만 마흔 이후 광속으로 흘렀던 심리적 시간을 역추적해보니 노년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자각이 와서다. 어쨌건 친구는 죽음이 후회스럽지 않도록 삶의 클라이맥스인 인생 3막을 좀 더 성장하고 성숙한 캐릭터로 변화해 살고 싶다는 말을 듣고서야 웃음을 멈췄다. 그러더니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너그럽게 수용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얼마나 자기 삶을 풍요롭게 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라 그가 해준 말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런 친구를 곁에 두고도 진작에 깨닫지 못했던 인생 일 이막의 내가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게임 시나리오 작법을 공부하다 보면 빠지지 않고 2천 년 전 아리스토 텔레스가 썼던 ‘시학’ 이야기가 나온다. 결론은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이 있기에 종류를 막론하고 시나리오의 기본은 시작점인 1막을 거쳐 갈등이 고조에 이르는 2막에 이어 3막 클라이맥스에서는 정점에 오른 갈등을 해결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과야 어떻든 클라이맥스를 지나게 되면 모든 것이 평형을 이루는 상태로 되돌아온다. 어떤 이야기던 이 3막 구조의 패턴을 벗어나지 않아야 좋은 시나리오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이 패턴을 벗어난 유달리 특이한 인생이나 삶의 이야기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할리우드의 블럭버스터도 이 3막 구조의 패턴을 벗어나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다중의 플롯을 삽입해 스토리의 재미를 올릴 수는 있지만 처음부터 이 기본구조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어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영화는 영상을 통해 게임은 플레이를 통해 스토리를 전달한다는 차이가 있지만 게임 시나리오 또한 3막 구조 기본에 충실할수록 성공할 확률이 높은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게임을 좋아하기 때문인진 몰라도 영화나 드라마보다 게임을 끝내고 나서 더 자주 감동을 느끼곤 하는데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 봤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굳이 이유를 하나 찾아보자면 영화와는 달리 게임에서는 클라이 막스 시점이 되면 내가 키운 캐릭터가 크게 성장해 있다는 거다. 스테이지마다 부여받은 퀘스트를 완수하기 위해 작전을 짜고 조무래기 빌런들과 싸운 경험을 바탕으로 최적의 무기와 기어를 빌드해 중간 보스를 무찌른다. 무찌른다는 말이 참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 말 외엔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클라이맥스에 이르게 되면 악의 근원인 최종 보스와 대적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한다. 그동안 갈고닦은 전투력으로 사력을 다해 최종 빌런과 싸우고 나면 물리적으로 빌드된 무기와 기어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플레이를 통해 얻었던 경험이 자부심이 되기도 하고 무엇이라고 딱히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내적인 만족감을 느낀다. 나였던 내 캐릭터가 게임의 시작때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성숙하고 성장했기 때문이다. 약하기만 했던 캐릭터를 성장시키면서 얻게 되는 정서적 유대감과 연결을 통해 현실의 내가 의미 있는 발전과 성숙을 경험하는 것이다. 비록 최종 결과가 비극에 이르는 죽음일지라도 그 죽음은 가치 있고 아름답다.


게임이나 영화를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와 마찬가지로 아니 원래부터 시나리오라는 게 사람 사는 이야기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우리 인생도 결국은 영화나 게임 시나리오의 3막 구조 안에 들어있다. 원했던 원치 않았던 우주의 어떤 순환적 원리에 의해 삶을 부여받고 그 삶을 이어가기 위해 분투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과거를 돌아보고 죽음을 생각해 보는 인생 3막 클라이맥스 안에 입장해 있다. 별것 아닌 것들에 집착해 상처 내고 상처받고 허망한 가치에 휘둘려 길을 잃기도 했다. 연약하고 불안하기 그지없었던 그 모든 애씀과 노고조차 내가 지금 여기 살아있다는 증거였으며 내 삶의 클라이맥스 3막을 위한 귀중한 자산이었다. 이 삶의 결과가 부정적이던 긍정적이든 결국 죽음이라는 평형점에 도달해 또 다른 우주의 순환을 향해 흐를 것이다. 그 누구더라도 어떤 삶이라도 어떤 스테이지에 놓여있을지라도 삶,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존중받아야 할 이유다. 미숙했지만 아름다웠던 일이 막 삶의 과정들이 선물해 준 성장을 통해 이 삶의 클라이맥스 3막을 풍요롭게 이끌고 싶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다 할지라고 가볍고 평온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이 생의 모든 혼란과 아픔조차도 더없이 행복하고 아름다웠던 여정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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