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이치 사카모토를 추억하며

merry Christmas Mr. Lawrence

by 하늘아래

류이치 사카모토(坂本龍一)를 추억하며


2023년 3월, 류이치 사카모토(坂本龍一 1952~2023)가 암투병 중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피아니스트, 전자음악 밴드, 영화배우, 영화음악가, 전위음악가, 미디어아트 작가,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며 다방면에 큰 발자취를 남긴 예술가였다. (일본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면 사마코토 류이치가 맞는데 왜 한국에서는 류이치 사카모토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사람들에게 친근하게 그냥 류이치 사카모토라고 하자)

내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2017년 황동혁 감독의 영화 <남한산성>을 보다가 허리우드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화면의 스토리를 위해 만들어진듯 장대하게 펼쳐지는 음악이 압권이었다. 누가 음악을 맡았는지 궁금했는데 류이치 사카모토였다.

잠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자면 영화 <남한산성>에서 김상헌(김윤식분)이 뱃사공을 칼로 베고 선혈이 눈 위에 번지는 남한산성의 인트로 부분, 청태종이 인조에게 보내는 서신을 읽는 장면에서 산을 찢을 듯, 하늘을 비틀듯, 늑대가 우는 듯 공포스럽게 들리는 소리, 그리고 인조가 삼전도로 가기위해 남한산성을 나올 때 퍼지는 깊고 슾픈 피아노와 현의 울림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네(인조)가 기어이 나(청태종)의 적이 되어 거듭 거스르고 어긋나 환란을 자초하니 너의 아둔함 조차 나의 부덕일진대 나는 그것을 괴로워하며 여러 강을 건너 멀리 내려와 너에게 다다랐다. 너는 살기를 원하느냐 성문을 열고 조심스레 걸어와 내 앞으로 나와라”

영화 <남한산성> OST ‘칸의 문서’에 나오는 청태종의 대사

류이치 사카모토의 첫인상은 사실 음악보다 그의 외모였다. 참 잘 생겼다. 흰머리가 희끗하고 편안한 세미정장에 뿔테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신사였다. 외모 만으로도 진지하면서도 내면의 열정이 눈에서 빛나는 범접할 수 없는 예술가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인생은 나무위키만 봐도 자세하다. 그가 시도해 온 음악적 범위는 매우 광대하여 고전 클래식 음악에서 시작하여 일렉트로닉과 뉴웨이브록, 재즈, 탱고, 보사노바, 뉴에이지, 힙합 등 음악적 상상의 한계가 광대하다. 어떻게 한 인물이 이런 다양한 음악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는 1952년생이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지난한 세월을 보냈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았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 특유의 근면성과 높은 저축률을 바탕으로 연평균 GDP 성장률 10%라는 고도성장을 거듭했다. 소니, 도요타 같은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이 바로 이때다. 당시 소니의 워크맨과 조지루시 코끼리 밥통이 우리나라에서 불티나게 팔렸다.


Ryuichi Sakamoto 양윤옥 역 청미래 2023년


2009년에 쓴 자전적 에세이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를 읽어보면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숨겨진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한마디로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도쿄 세타가야 구의 지유가쿠엔 유치원에 다니면서 3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아버지는 출판 편집자였다.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교육을 전담했고 부유한 외할아버지가 재정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외삼촌은 피아노를 잘 쳤고 집에는 클래식 레코드가 쌓여있었다. 텔레비전이 있어서 웨스턴 서부극이나 스티브매퀸이 나오는 <대탈주>같은 영화를 어려서부터 볼 수 있었다. 초등학교시절 바흐를 피아노로 접하며 악보 보는 법, 연주하는 법을 익혔다.


나는 바흐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보통 피아노곡은 오른손이 멜로디, 왼손이 반주인 경우가 많은데 나는 그게 몹시 싫었다. 내가 왼손잡이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흐이 곡은 오른손으로 나왔던 멜로디가 외손으로 바뀌거나 나중에 형태를 바꿔 다시 오른손으로 나오기도한다. 오른손과 왼손이 매번 역할을 바꿔가면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진행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동요나 부르고 소꼽놀이를 했어야 할 어린 나이에 바흐의 대위법을 이해하였다니 놀라웠다. 외삼촌 레코드 컬렉션에서 드뷔시의 현악사중주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 이렇게 바흐와 드뷔시는 그의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1964년 중학교 입학하면서 관악부에 들어가 튜바를 배우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악보를 넘기며 음악을 해독했다. 모리스 라벨의 현악사중주는 그에게 드뷔시 이후로 또 한 번 충격을 주었다. 아버지의 서가를 넘나들면서 독서를 했다.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손에 들고 다녔다.

도립 신주쿠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프로이트를 읽었다. 지능검사를 해서 2등을 했다. 신주쿠 재즈카페 거리를 순례하며 커피를 마시고 프리재즈에 심취했다. 합창부에 들어갔고 전위연극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으며 작곡연습과 함께 베트남 전쟁을 거부하는 학생운동과 학교개혁을 위해 수업거부 운동에 참여했다. 영화를 좋아해서 신주쿠 도로 주변 영화관을 찾아갔다. 피에르 파솔리니, 프랑수아 틔뤼포, 장 뤼크 고다르의 영화를 봤다. 특히 고다르의 해체주의 영화형식에 매료되었다. 고3 때는 존케이지 등 미니멀 음악작곡가들을 접하였고 콘서트 장에서 나비를 날리는 라몬테 영의 작품을 경험하였다. 사회제도의 해체, 기존의 음악제도나 구조를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류이치 사카모토 음악의 원형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입시에 짖눌려 김용의 <영웅문>만 내리 읽어댔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과 비교하면 사카모토는 별천지 세상에서 살았던게 분명하다.


드뷔시의 인류 역사상 가장 세련된 형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 음악에도 역시 프랑스의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범죄성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반드시 의식해 주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1970년 도쿄예술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현대음악 록콘서트에 열중하며 테크노뮤직 일렉트로니카 전자음악에 빠져들었다. 대학교 3학년 때 유화과 학생과 첫 번째 결혼을 하였다. 아이가 생긴 결과였다. 지하철 공사장, 주점, 샹송바 피아노 연주 등 알바를 해서 돈을 벌었다. 1978년,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MO, Yellow Magic Orchestra)’라는 역사적인 3인조 음악그룹을 만들었다. 참신한 전자 사운드로 일본 가요계에 충격과 반향을 일으키며 일본 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그룹으로 성장하였다. 1979년 데뷔앨범을 내고 유럽 미국 월드투어에 나섰다.

1982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전장의 크리스마스>에서 영국가수이자 배우 데이비드 보위와 배우로 출연하며 영화음악도 맡았다. 다음 해 칸영화제에 갔다가 이탈리아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을 만났다. 그 인연으로 <마지막황제>에 출연하였고 그 영화는 1988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9개의 상을 휩쓸었다. 사카모토는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베르톨루치는 처음에 영화음악을 엔리오 모리코네에게 맡기려고 했었다고 한다. 영화 <마지막황제>를 보다보면 황제 푸이가 자금성에서 자전거를 신나게 타는 장면이 나온다. 사카모토의 말에 의하며 베르톨루치 감독이 이 장면을 꼭 넣어야 한다고 고집했다고 한다. 하긴 지금도 이탈리아인의 세 명 중 한 명은 자전거를 탄다고 한다. <인생은 아름다워>, <시네마천국> 처럼 이탈리아 영화에는 어김없이 자전거 타는 장면이 항상 등장한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마지막황제>에서 사카모토는 아마카스라는 일본인 장교역을 맡았다. 만주국 설립에 깊이 관여한 인물로 일본패전 후 음독자살한 인물이다. 베르톨루치 감독은 영화의 극적 효과를 위해 사카모토에게 음독이 아니라 할복자살을 연기하라고 했지만 사카모토가 절대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결국 영화에서는 권총자살한 것으로 처리하였다. 그는 이후 브라이언 드 팔마의 <팜므파탈>, 자트 데리다의 다큐멘터리 영화 <데리다>의 음악을 맡았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 음악작업에도 참여했다. 그 후 가족모두 뉴욕으로 이주해 19년(2009년 기준)을 살고 있다.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라는 책은 2009년에 멈춰있다. 이후 15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2023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한국에는 세 번의 공연기록이 있다. 2000년 첫 내한 공연에는 오랫동안 사카모토의 음악을 사랑해 왔던 골수팬들과 더불어 그에게 영향을 받은 수많은 국내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2015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The Revenant)>에서 음악을 담당해 골든글로브상 최우수작곡상 후보에 올랐다. 같은 해 일본 국회 앞에서 아베 신조 정부가 추진 중인 안보법안 반대 시위에 참가했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반핵운동에도 앞장섰다. 2017년에 우리 영화 <남한산성>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최근 한국에서 주목받은 것은 2022년 유희열이란 한국 뮤지션이 사카모토의 작품 'Aqua'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신문 지면을 덮으면서였다. 암투병 중이던 류이치 사카모토는 이례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며 많은 것을 배운 바흐나 드뷔시에게서 분명히 강한 영향을 받은 몇몇 곡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바흐나 드뷔시와 같은 수준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오해는 말아주세요.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예술에 영향을 받습니다. 거기에 자신의 독창성을 5~10% 정도를 가미한다면 그것은 훌륭하고 감사할 일입니다. 그것이 나의 오랜 생각입니다. 나는 여전히 내가 만드는 모든 음악에서 독창성의 비율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또한 예술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희열 씨와 팬분들의 아낌없는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유희열 씨의 새 앨범에 행운을 기대하며 그에게 최고를 기원합니다.


대중은 유희열에게 분노하기보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대가다운 풍모에 찬사를 보냈다. 이것을 계기로 <Rain>, <merry Christmas Mr. Lawrence> 등 그의 대표곡이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되었다.

나는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라는 책의 후기에서 그의 말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는 위대한 음악가이기 전에 정말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내 인생을 이렇게 돌아보니 나라는 인간은 혁명가도 아니고 세계를 바꾼 것도 아니고 음악사에 기록될 만한 작품을 남긴 것도 아닌, 한마디로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았다. 내가 나는 음악가올시다라고 잘난 얼굴을 내밀 수 있는 것은 한마디로 내게 주어진 환경 덕분이다. 정말 행운과 풍요의 시간을 보내왔다. 그것을 내게주신 분들은 우선 부모님이고 부모님의 부모님이기도 하고 숙부와 숙모이기도 하고 또한 수없이 만난 스승과 친구들이며 일을 통해 만난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무슨 인연인지 나와 한 가족이 되어준 이들과 나의 파트너였다. 지난 57년 동안 그들이 내게 부여해 준 에너지의 총량은 내 상상력을 풀쩍 뛰어 넘는다. 그 생각을 할 때마다 한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빛조차 닿지 않는 칠흑 우주의 광대함을 흘낏 엿본 듯한 신기한 감정에 휩싸인다.


한 개인이 이루었다기보다는 위대한 성취 앞에서 자신을 한낱 보잘것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타고난 환경에 감사할 줄을 아는 그는 분명 거장임에 틀림없다. 그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경이롭게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소탈하고 겸손한 전형적인 일본인들의 겸양이라고 하기에는 그 이상의 깊은 울림과 깨달음이 그의 말에서 느껴진다. 그의 음악이 일본이라는 좁은 섬나라 감성을 벗어나 세계가 공감하는 보편적인 감동을 이끌어내면서 자유롭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2017년 황동혁 감독의 <남한산성> 메이킹 영상에서 류이치 사카모토의 육성을 들을 수 있었다.


저는 한국영화에 참여하기를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시나리오가 쉽게 읽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저의 첫 번째 목표는 현대음악과 서양음악, 즉 저의 음악과 한국의 전통음악을 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정말 열정적으로 작업했습니다. 저에겐 오랜 시간 교류해온 한국인 음악가 친구들이 있습니다. 한국 전통음악밴드 ‘사물놀이’의 리더 김덕수씨는 35년된 친구입니다. 황동혁 감독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 아니라 음악의 방향성에 대해 디테일하고 큰 그림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는 제가 가지고 온 다양한 아이디어도 개방적으로 들어주고 받아주었습니다. 저는 한국 전통음악의 요소를 영화 <남한산성>의 사운드트랙에 사용하고 싶습니다. <남한산성>은 정말 좋은 영화입니다. 황동혁 감독의 도전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존중하고 재능있는 영화감독 앞에서 겸손하게 존경을 표시하는 그의 인품에 큰 감동을 받게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2022년 녹음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연주를 듣고 있다. 그가 수도 없이 연주했을 <merry Christmas Mr. Lawrence>란 곡이다. 흑백의 영상 속에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 숙인 사카모토의 하얀 백발이 보이고 카메라는 점점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그의 손가락을 비춰준다. 빛과 어둠이 그의 얼굴과 뒷모습에 가득하다. 정맥이 드러날 정도로 앙상한 손. 굳게 다문 입, 그는 병마를 잊고 자유롭게 피아노를 연주한다. 마치 일생의 마지막 연주라도 하는 것처럼.


https://www.youtube.com/watch?v=z9tECKZ60z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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