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농사 분투기
텃밭 농사 개시일을 한 달 앞둔 3월
마음이 분주해졌다.
지난해 우리 집 텃밭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노후 담장을 헐고 뒷마당 보강토 공사를 하느라 굴삭기와 덤프트럭이 텃밭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육중한 궤도와 바퀴에 짓눌린 땅은 작물의 터전이라기보다 공사 현장의 바닥에 가까웠다. 겨울 내 꽁꽁 얼어붙어 침묵하던 땅이 3월의 볕을 받자 서서히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텃밭 여기저기 생긴 물 웅덩이는 어느새 텃밭을 늪지로 만들 기세다. 텃밭이 아니라 마당이었다.
서둘러 밭의 경계를 다시 그었다. 삽으로 흙을 북돋우며 망가진 땅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일부터 시작했다. 한 삽 들어 가자 아직 얼어붙은 땅이 단단했다. 날이 풀려 땅이 녹아도 땅이 살아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숨을 쉴 수 있는 통기성, 수분을 머금는 힘, 그리고 작물을 키워낼 영양분. 이 모든 것을 위해선 ‘가축분 퇴비’라는 보약이 필요했다.
300평 이상 농사를 크게 짓는 사람들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 파렛트 단위로 가축분 퇴비를 저렴하게 공급받지만 작은 텃밭을 일구는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앞집 아주머니에게 받아 놓은 퇴비기 남으면 좀 나눠달라고 말한 넉살도 없었다. 그러던 중 아내가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퇴비를 저렴하게 파는 판매처를 찾아냈다. 올려놓은 사진을 보니 정부인증도 받았고 계분 함량도 높았다. 퇴비 포대에서 친환경 인증 마크까지 확인하니 마음이 놓였다.
토요일 오후, 퇴비를 사기 위해 출발했다. 고작 20분 거리라 생각했는데 길은 예상치 못할 정도록 가팔랐다. 축령산 능선을 넘으며 마주한 설산의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그늘진 산길은 여전히 빙판이었다. 걱정하는 아내를 안심시켰다. 좋은 것을 얻으러 가는 길은 늘 이토록 험하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법이라고.
땅이 녹아 질퍽한 판매처 농원에 들어섰다. “이 가격이면 정말 거저 드리는 거예요.” 판매자의 말대로 20kg 한 포에 3,000원이면 원가였다. 트렁크 가득 가축분 퇴비를 채웠다. 건장한 판매자의 아들이 거들었다. 딱 11포가 트렁크에 들어찼다. 집으로 돌아와 빈 파렛트 위에 퇴비를 쌓고 비닐을 덮어두니, 마치 곳간에 쌀을 채운 듯 마음이 든든했다.
앞집 이웃은 계분 퇴비의 과도한 사용을 경계하라는 조언을 해줬다. 계분 퇴비는 질소와 인산이 풍부해 성장에 좋지만, 과하면 땅에 염류가 쌓여 산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건 계분이 아니라 돈분이나 우분에도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이웃은 욕심이 과하면 땅도 체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이 분명했다. 우리 밭 규모라면 네 평당 한 포 정도면 적당할 터다. 다음 주 일요일 퇴비를 뿌려 놓고 2주 정도 묵힐 예정이다.
텃밭 농사의 시작은 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땅이 무엇을 원하는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살피는 정성이 먼저다. 흙에 대해 여전히 무지한 초보 농부라 이러다 땅을 망가뜨리는 것은 아닌지 무엇을 하든 두렵다. 조심스러운 그 마음만큼은 앞으로 심을 작물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