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마당에 흙을 메우며

텃밭농사 분투기-02

by 하늘아래


뒷마당에 흙을 메우며


10평 남짓한 시골집 뒤뜰은 해가 잘 들지 않는다. 다행히 작년 11월, 집을 둘러싸고 있던 노후 담장을 헐어내자 바람이 통하고 햇볕도 한결 깊이 들어왔다. 문제는 바닥이었다. 담장을 허물기 위해 굴삭기가 마당으로 들어오면서 궤도에 눌린 보도블록이 깨지고 지반이 낮아졌다. 게다가 겨우내 방치된 사이 눈이 쌓였다 녹기를 반복하며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결국 아내와 상의 끝에 뒷마당에 토사를 채우기로 했다.


사전 작업으로 아들이 반나절 품을 팔아 뒤뜰에 깔려 있던 보도블록을 모두 들어냈다. 아직 땅이 덜 녹은 탓에 지표면에서 블록을 떼어내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걷어낸 블록을 소나무 밑에 쌓아 두었더니 얼추 300장은 되어 보였다. 이제 남은 문제는 토사를 어디에서 구해 어떻게 채우느냐였다.


토사는 보통 덤프 단위로 판매한다. 흙의 종류와 수량, 배송 거리에 따라 값이 달라졌다. 흙을 고르게 펴고 다지기 위해 굴삭기까지 동원하면 비용이 못해도 60만 원은 넘을 것 같았다. 그때 옆집과 앞집에서 마당에 잔디를 깔기 위해 토사를 주문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왕 하는 일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다고 누가 나무랄까 싶었다. 담당자가 현장을 보러 온다기에 부랴부랴 텃밭 시골집으로 향했다.


견적은 45만 원이 나왔다. 덤프 두 트럭 분의 흙값 20만 원에 덤프와 굴삭기 비용을 세 집이 나눠 부담하는 방식이었다. 나쁠 것 없는 조건이었다. 다만 운반 날짜와 작업일은 여러 사정을 고려해야 해 특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래도 3월 안에는 끝내겠다고 했다. 평일에 내려오기 어려운 형편이라 우리 집은 주말 작업을 부탁했다.


며칠 뒤, 3월 1일 일요일이었다. 지방에 내려가 있던 중 갑자기 앞집에서 연락이 왔다. 토사를 실은 덤프트럭이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주인 없는 우리 집 울타리를 걷고 흙을 내려도 괜찮으니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해질 무렵 시골집에 가 보니 뒷마당 향나무 옆에 토사가 언덕처럼 쌓여 있었다. 다행히 흙의 질은 매우 좋아 보였다. 이제 남은 일은 그 흙을 마당에 채우는 것뿐이었다.


일주일 뒤 일요일 아침, 굴삭기 작업이 진행됐다. 세 집이 동시에 토사를 채우고 다지는 일정이었다. 굴삭기는 텃밭 옆에 쌓여 있던 흙을 밀어 뒷마당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기사의 손놀림이 노련했다. 작업은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끝났다.


굴삭기가 떠난 자리에는 덩그러니 넓은 공간이 남았다. 이제 이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현무암 부정형 판석을 깔아 넓은 뜰을 만들까, 아니면 잔디를 깔까. 배수로는 어떻게 낼지, 텃밭과의 경계는 무엇으로 나눌지, 당장 필요한 자금은 또 어떻게 마련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내와 함께 걷어 두었던 보도블록을 가져와 텃밭 경계에 다섯 단으로 쌓았다. 래미탈로 고정을 해야 할지 잠깐 고민도 했다. 전체 청사진 없이 급한 것부터 손대다 보니 결정할 일이 끝이 없다. 텃밭에는 곧 퇴비도 줘야 하고, 앞뜰에 심을 나무도 보러 가야 한다. 지붕 덧방 공사는 빨라도 6월은 되어야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아내와 이렇게 다짐했다. 한꺼번에 다 할 필요는 없다. 한 가지씩, 천천히 해 나가자. 생각해 보니 시간에 쫓길 이유도 없다. 재촉하는 사람도 없다. 조급한 것은 늘 마음뿐이다. 그 마음만 다잡으면 된다. 기력이 닿는 만큼, 형편이 되는 만큼 하면 된다.



흙을 채우고 난 뒤 마당을 한 바퀴 천천히 걸어 보았다. 평평해진 땅은 아무것도 없는 빈자리였지만, 이상하게도 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무엇이든 놓을 수 있는 여백처럼 보였다. 생각해 보면 사는 일도 비슷한 것 같다. 늘 완성된 풍경을 먼저 꿈꾸지만 실제의 삶은 늘 더디기만 하다. 먼저 땅을 고르고, 돌을 치우고, 흙을 메우는 일부터 시작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변화도 없는 것 같지만, 그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무엇인가가 자랄 자리가 생긴다.


마당을 가꾸는 일은 결국 시간을 들여 땅을 설득하는 일이다. 조급하게 밀어붙인다고 금세 아름다운 뜰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계절이 지나고 손이 몇 번 더 가야 비로소 모양이 잡힌다. 이제는 서두르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은 흙을 메우고, 다음에는 경계를 쌓고, 또 어느 날에는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이 빈 마당에도 우리 집만의 풍경이 생길 것이다. 집은 삶 속에서 완성되기에.


원칙이 있다면 단 하나다. 서툴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은 되도록 우리 손으로 직접 해보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시골집 고치는 일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조금씩 이곳에 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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