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농사 분투기 - 03
나무 울타리 만들기
시골집 텃밭은 앞 도로와 구거를 마주하고 있다. 구거가 나름의 경계 역할을 하고 있긴 했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좀 그렇다. 눈에 보이는 근사한 울타리 하나쯤은 있어야 안심이 된다. 길이는 대략 12미터. 그동안은 사철나무와 오가피 나무가 듬성듬성 이 빠진 치아처럼 대충 울타리인 척을 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가지를 치고 오래된 철조망과 철사선을 걷어냈다. 갑자기 휑해졌다. 비워진 자리에는 이상하게도 뿌듯함보다 막막함이 먼저 들어섰다. 뭘로 울타리를 만들어야 하나? 처음에는 저스틴 블록 같은 고급 디자인 블록을 떠올렸다. 사진으로 보면 그렇게 우아하고 근사할 수가 없다. 그런데 가격을 보는 순간 마음을 바로 접었다. 블록 하나에 만 원이 넘는다. 울타리가 아니라 재정 상태부터 무너질 판이었다. 시공과정도 복잡해 보였다.
방향을 틀었다. ‘그래, 녹색 휀스 정도면 되지.’ 문제는 ‘정도면 되지’의 과정이 전혀 ‘정도’에 맞지 않는 데 있었다. 사각 기초를 만들고, 콘크리트를 붓고, 구멍을 뚫고, 앙카를 박고, 기둥을 세우고 머릿속에서는 이미 모든 계획은 완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삽 두 개에 전동드릴 하나 뿐이다. 장비 상태가 너무 정직했다. 뭐부터 사야할 지도 모르겠다.
업체를 부를까? 100만원이 넘어갔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 결론은 하나다. 차라리 내가 한다. 유튜브 영상과 네이버 카페를 뒤져봤다. 세상에는 왜 이렇게 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다들 장비도 풀세트고, 손놀림은 장인의 그것이었다. 혼자서도 대공사를 거뜬 해낸다. 숨어있는 일꾼이 있는 게 분명했지만 나는 그마저도 없다. 잔뜩 주눅만 들었다. 그걸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 했다.
“뭐가 그리 어려워. 고민만 할꺼야? 그럴 거면 내가 할까?”
순간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것은 약간의 공포와 오기, 근거없는 자존심이었다. 바로 읍내 목재철물점으로 향했다. 쌓아 놓은 건축자재를 보니 울타리가 아니라 아파트도 짓지 싶었다. 없는 것이 없었다. 울타리 제작에 필요한 것을 열거하니 직접 보여주겠다며 나이 지긋한 점원 아저씨가 1톤 트럭 앞자리에 나와 아내를 태워 자재 창고 구경에 나섰다. 나중에 또 다른 것을 만들지도 모르지 견문도 넓힐 겸 잘 되었다 싶었다. 둘러보고 돌아오니 사장 아들로 추정되는 젊은 청년이 기다리고 있었다. 꼬깃꼬깃 준비해온 종이를 펼치며 필요한 자재를 열거했다.
주춧돌 8개, 4*4 각목(89*89*3600) 4개, 2*4 각목(200*400*1800) 7개, 데크 방부목 (15*95*1800) 12개, 아연피스 75미리 한 봉, 기역자 격쇠 60개, 일반 미장용 래미탈(40kg) 2개, 수평자 1개 등등
‘울타리’가 아니라 하나의 ‘건설 프로젝트’가 되어가는 형국에 긴장감이 느껴졌다.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느낌이었다. 계산을 마치니 35만 원이 넘었다. 그나마 목재를 치수에 맞게 잘라주고 가까운 거리라며 무료로 배송해 주어서 다행이었다. 물건이 큰 트럭에 실려 곧 도착했다. 래미탈 40kg을 등에 짊어지자 다리가 휘청거렸다.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 오일스테인을 꺼내 들었다. 노란색 물감처럼 목재 위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이것은 내가 할게.” 그럼 난 저것을 해야지, 그런데 해가 이미 지고 있었다. 저것을 담주로 미루기로 했다.
주말이 왔다. 군 제대를 하고 복학을 준비하던 아들을 호출했다. 이럴 때 쓰라고 키운 귀한 노동력이었다. 품삯을 준다고 하니 냉큼 달려왔다. 군대에서 삽질정도는 배우고 왔으니 땅파는 것을 잘할 것 같았다. 1.8미터 간격으로 땅을 파고 주춧돌을 묻게 했다. 수평을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예민했다. 조금만 틀어져도 티가 났다. 인생에선 중용이 중요한 것이거늘 울타리 작업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인생을 또 배우는구나 싶었다.
기둥을 세우고, 가로대를 잇고, 격쇠를 전동드릴로 고정했다. 나사가 돌아가며 목장갑을 말아버리는 아찔한 순간을 무사하게 넘겼다. 고추끈을 팽팽하게 당겨 직선을 맞췄다. 목재도 땅도 고르지 않았다. 이럴 때는 대충이 필요했다. 고집을 꺽고 어긋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평안이 찾아왔다. 울타리 한 칸에 90센티로 자른 방부목 여섯 장을 박았다. 반복 작업이 시작됐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2*4 각목이 부족하다. 처음부터 계산을 잘못한 것이다. 잠깐의 정적.
“아… 망했다.”
다시 차를 몰고 목재철물점으로 갔다. 일요일이라 휴업. 그날 얻은 교훈은 단순했다. 생각이 짧으면 몸이 피곤하다. 또 다시 시간이 흐르고 우여곡절 끝에 울타리를 완성했다. 완성까지 3주가 걸렸다. 울티리를 세워놓고 보니 솔직히 조금 낮다. 좀 더 높게 할 걸 그랬나 싶었다. 그런데 곧 생각이 바뀌었다. 4월이 되면 사철나무와 오가피가 다시 자랄 테고, 그 사이사이에 화분까지 놓이면 지금의 이 낮은 울타리 만으로도 충분하다.
다음 해아 할 일이 떠올랐다. 작년에 둘러놓은 노루망을 철거해서 시골집 측량점에 맞게 다시 설치해야 한다. 텃밭에 첫 모종을 심기 전까지 끝내야 하는 일이다. 마음만 바쁘다. 몸은 주말을 기다린다. 옆에서 아내가 말한다.
“그러길 누가 울타리 하나 붙잡고 한 달을 고민하래?”
나는 대답 대신 웃었다.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멀리서 새로 만든 노란 울타리가 눈에 들어왔다. 엉성하지만 단단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