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농사 분투기 - 04
노루망 울타리는 밭작물을 지키기 위한 경계선이다. 노루나 고라니가 넘지 못하도록 둘러치는 그물형 울타리라고 보면 된다. 작년에는 텃밭 옆 7평 남짓한 밭을 윗집에서 빌려 쓰느라 경계선을 조금 욕심내어 30미터쯤 넓게 둘러놓았었다. 작년에 집을 둘러싼 경계 측량을 마치고 등기된 대지의 선을 따라 말뚝을 박았다. 그리고 올해는 더 이상 밭을 빌리지 않기로 했다. 계산을 해보니 노루망 길이가 오히려 10미터가 늘어나 총 40미터가 되었다.
형편이 넉넉했다면 녹색 휀스를 둘렀을지도 모르지만 작년에 쓰던 것을 재사용해도 별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돈도 줄이고 시간도 절약하고 나쁠 것 없었다. 토요일 오후, 귀한 일꾼 아들을 다시 불러냈다. 일당만 잘 쳐주면 군말없이 따라 나오니 다행이었다.
낮 기온이 14도를 넘자 땅이 녹아 삽이 잘 들어갔다. 먼저 울타리 밖에 있던 퇴비장을 허물었다. 나무 파레트 다섯 장을 걷어내니, 그 안에서 굼벵이와 지렁이가 느릿하게 몸을 뒤척였다. 발효된 냄새가 은은하게 올라왔다. 손으로 쥐어보니 짙은 갈색이다. 지난 한 해 모았던 음식물과 풀과 수확의 찌꺼기가 귀한 퇴비가 되어 있었다. 퇴비를 모두 밭 한쪽에 뿌렸다.
물푸레나무를 옮겨 심었다. 뿌리가 고목에 얽혀 있어 몇 번이나 흔들었고 긴 뿌리를 잘라내야 했다. 겨우 옮겨 심고는 웅덩이에 물을 채워 뿌리 사이 공기가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흙을 덮었다. 심고나니 옆에 심어둔 블루엔젤 열 그루와 제법 잘 어울렸다.
본격적인 일은 그 다음이었다. 1.5미터 간격으로 박혀 있던 1.8미터 파이프 지지대를 하나씩 뽑아냈다. 노루망을 고정하는 용도로 썼던 철치마클립이 우르르 쏟아졌다. 총길이 30미터, 겹쳐 놓은 부분까지 50미터인 노루망을 찢어지지 않게 걷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어느덧 시계를 보니 오후 4시. 아들이 배고파했다. 라면을 끓여 먹고 나니 5시. 해가 질 때까지 1시간 반 남았다. 조금 서둘렀다. 계선을 따라 지지대를 박기 시작했다. 어떤 곳은 돌이 많아 도무지 지지대가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길이 1미터짜리 고추대용 아시바 파이프를 먼저 해머로 박고 옆에 지지대를 덧대 세웠다. 케이블타이로 단단히 묶었더니 쓸만 했다.
아들은 옆에서 노루망을 풀어 클립에 끼웠다. “아빠, 이거 터질 것 같은데?” 10미터쯤 설치를 하면서 고정했더니 노루망이 너무나 팽팽해졌다. 더 진행하면 찢어질 것이 뻔했다. 결국 다시 풀었다. 해가 졌다. 작업을 멈출 수는 없었다. 랜턴을 켰다. 아들은 맨투맨 차림으로 버티다가 결국 어디선가 후리스를 꺼내 입고 돌아왔다. 투덜거렸지만 오기가 생겼는지 손을 계속 움직였다. 차가운 흙의 냉기가 내 장화를 타고 들어왔다. 발이 너무 시려웠다.
저녁 7시가 되어서야 1차 설치 작업이 끝났다. 아들을 먼저 들여보내고 혼자 랜턴을 들고 울타리를 한 바퀴 돌았다. 늘어진 케이블타이를 하나씩 잘라냈다. 도로 쪽으로 나와 멀리서 바라봤다. 전봇대 위 가로등이 켜지며 40미터 노루망이 휴전선 능선처럼 희미하게 빛났다.
작년보다 땅은 줄었지만, 대신 집을 중심으로 마당이 한결 아담해졌다. 노루망 안쪽의 나무들이 어둠 속에서 푸른 기운을 띠었다. 블루엔젤과 향나무, 그리고 겨우 옮겨 심은 물푸레나무까지. 오늘따라 서쪽 펜션 위쪽에서 별이 쏟아지고 있었다. 경계선을 바꾸자 내가 사는 자리가 조금 더 또렷해진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