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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Dec 10. 2018

사라졌으면 좋겠어

파랗게 멍든 시간들.21

외골수로 살아온게 25년이라서 집중한번 하면 쭉 하지만 비교적 작은 문제에도 심각해져 버리는게 문제다. 심각한걸 너무 심각하게만 받아들이는게 단점이 되어버리니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모르겠다. 지금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것에 집중해야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니 단점이라고 생각하는게 좋을 것 같다.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확신은 없다. 그럼에도 이게 맞다고, 잘 해내고 있다고 그리고 내가 최선의 길을 가는 중이라고 거듭 귀뜸해주길 바래. 그럼 정말 다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성격탓에 나는 한번 아프면 아픔에 깊게 빠져버린다. 그리고 항상 느끼지만 그럴 때일수록 나의 아픔에 대해서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는 선택적으로 자기 해석하며 편한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을 경험하곤 한다. 고마워. 덕분에 나는 점점 더 염세적으로 변해가는것 같다. 타인의 고난을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하는 현상은 그곳이 이미 공감따위 하나 없는 삭막한 사회임을 보이는 반증이다. ‘그건 너 힘든거지’, ‘난 힘들어’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를 해결하기 위해선 이분법 너머를 봐야만 한다. 무엇이 우리를 단순하게 사고하도록 만들었는지 고민해야만 한다.

언젠가부터 나의 고민도 생각도 결국 나의 것으로 치부되기 시작했고 어떤 공감도 사라지며, 그 순간들이 극에 치달았을때 안녕을 말한 네가 있었다. 이미 너와의 다툼 끝에 나도 포기하고 있었을지도. 그땐 누가 내게 오든 떠나가든 결국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인정해. 누가 떠나도 항상 준비가 되어있고 괜찮다고 외치고 다니던 나에게 최근 몇 년간의 관계 속에서 가장 큰 파동과 대미지를 준 건 너야. 오늘도 퇴근하고 잠깐 잠들었을 때 마지막 순간이 떠올라서 심장이 철렁하며 눈을 떴는걸. 솔직히 기분나빴어.

출장을 와서 피톤치드 가득한 곳에서 일을 하다보니 문득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도 놓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편히 쉬고싶다는 생각. 어쩌면 자살률이 높은건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자살밖에 없지 않아서가 아닐까. 그럼 나름 평화로운 세상인거 같다. 타인이 날 죽일 확률보다 내가 날 죽일 확률이 높은거잖아. 일에 대한 칭찬을 받고, 잘 하고 더 잘될거라는 말을 듣게 되고. 그런 와중에도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건 내가 없어도 어차피 날 대신할 부품은 많고 워크플로우는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걸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인걸까.

지금처럼 일을 하다보면 내가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은 자부심이 들게 만들어 주는 때가 있는가 반면 바보 만들고 무시하고 필요 없으면 외면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결국 전자 역시 일 열심히 하라고 그냥 던져주는 빈말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두 상황 다 내가 부품처럼 느껴지게 한다는건 변함 없지만. 물론 빈말들이 ‘내가 왜?’ 라는 생각을 부르는 후자보단 낫지만. 아무튼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어찌 되었든 내 선택이고 내 결정이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고난은 감수하고 시작했기 때문이니까.

실은 갑자기 우울함이 깊어진 이유는 며칠전, 그간 받은 상처들에 대해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갑자기 나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얘길 들었었고, 그것도 기분나쁜 이야길 했겠지. 그들의 더럽고 우스운 생각들로 나를 내리 깠을 생각을 하면 솔직히 마음이 아프고 서럽다. 내가 잘못한 걸까? 나는 그저 나로 있었을 뿐인데. 나는 쿨하지 못해서. 내가 잘못한 게 아니니 신경쓰지말라는 말에는 전혀. 신경을 안 쓸 수 없고 그 이야길 들은 후부턴 계속 신경이 쓰이고 슬프고 자주 서럽다. 이러니 염세적으로 변해간다 느낄 수 밖에 없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사람들이 너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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