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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Dec 09. 2018

그 겨울

파랗게 멍든 시간들.20

어떤 순간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싶어져서 내 마음 속에서 가장 귀한 단어를 몇 번이나 고르고 골라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확한 문장을 만들고 싶은 거야. 귀한 보물을 고운 비단보에 담아 간직하듯이 때때로 이걸 다시 펼쳐보았을 때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한 모든 것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도록. 그렇게 쌓아나가는 거라고 생각해. 시간이라는건. 차곡차곡 쌓아나가다 보면 너와 나의 시간이 우리의 시간이 되는거지. 그 시간은 분명 소중하고 빛나는, 그래서 되돌아 보았을 때 아름다웠다고 기억할 수 있는 것. 그런게 쌓여서 우리 시간이 되었을 터인데 그건 나만의 시간이었나 보다.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겨울인 탓일까. 본인 상처 감추기 급급해서는 타인에게 상처 주고 이득만 취해 일회용품처럼 취급해버리니 사람이 곁에 남아있을 수 있을까 싶었다.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 외로움은 스스로 극복해야지.’하며 다짐하는 동시에 내가 그랬기에 너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머릿속에서 나를 쑤시고 있다. 응. 어쩌면 자학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거 같아. 몸과 마음이 의기투합해서 자꾸 날 울리고 있는걸.

적당히 밝고 적당히 우울하며 적당히 이성적이고 적당히 감성적이기도 하지만, 그 적당히를 타인의 기준으로 나를 재단한다면 나는 많이 어둡고 복잡하며 이성보단 감성이 앞선 존재겠지. 이렇게 되기까지의 요인들 중에서는 인간관계도, 살아온 배경도, 나 스스로의 경험들도 무시하지 못해.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았는데 이제는 부러워져 간다. 나와 너무 다른 사람들이다. 아니 내가 그들과 다르게 살아왔다. 행복을, 행운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같은 것들이 ‘나에게 오지않는다면’이란 생각과 동시에 잘 해내지 못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조금 슬퍼졌다.

과연 이렇게 25년 정도를 살아온 내가 치열하게 살 수 있을까. 잘 해볼 수 있을까, 그들처럼. 욕심 하나는 있는 아이였는데, 이제 욕심보다는 어떻게든 최소한으로 고생하려 꼼수부릴 방법부터 떠올린다. 언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나는 그저 사랑받고 싶었고 그래서 열심히 사랑했을 뿐인데. 결국 나만의 시간이 되었던 그 시간들처럼 나도 아무렇지 않은 것 처럼 쳐내는 처세술이 필요한걸까? 그저 생각만 많아진다.

어느정도 계절이 지나고 해가 거듭되면 이 또한 결국 어느 한 부분이 겨울이었을 뿐 사실 매 순간 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 너는 봄이었으며 한 해의 끝에 겨울이 오듯 너와의 끝에서 겨울이 찾아왔을 뿐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이런 생각과 나의 행동들도 또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나 일지도 모르는거지. 알고 있어. 지금 친한 이들과 즐겁게 살고 있으며 하루 중 나의 우울은 일부일 뿐이라는것도 분명 잘 알고 있어. 그저 겨울이 추울 뿐이야. 따뜻함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추워서 그런거야.

다시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땐 나도 봄에 충실하고 싶다. 상처만 가득했던 겨울에서 허영 가득한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어떠한 상처를 받더라도 기댈곳이 필요한 ‘나’이기도 하며 이 계절에도 어딘가에서 꽃이 피고 있다는 사실이 하나의 위로로 다가온다. 부스러기가 되는 나의 감정들은 그 조각이 사라지더라도 흔적이 남아있을것. 이 또한 언젠가 꽃으로 피어나겠지. 그래. 나만의 시간이더라도 굳이 상관 없다. 나에겐 충분히 좋은 시간이었고, 잊기 싫은 시간이다. 그러니 나에게 꽃으로나마 남아주길 바란다. 이해하길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또 다시 남들과 다른 방향에서 다른 방식으로 치열하게 사는 방법을 모색할듯하다. 이번 겨울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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