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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Dec 12. 2018

기억의 완성

파랗게 멍든 시간들.22

기억할 필요가 없었던 나날들에 대해 기억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기억할 필요가 없었던 날들은 작성하지 않아도 되는 날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잠시 후 ‘작성하지 않으면 살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그건 비약이지. 어쩌면 문장이 되지 못하면 살지 않았다고 말해 버리는 건 어쩐지 내 삶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절하하는 건 얼마든 좋았지만, 내 삶을 할인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작성하지 않으면 살지 않았다고 한 번쯤 우겨 보고 싶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 그치만 조금은 틀려도 상관 없는 것, 그리고 틀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럴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은 내가 나에게만 베푸는 관용이 아닌 타인에게도 베풀어야 하는 관용이라는 것. 그래야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이 사실을 잊고 지내다가 생각치 못한 것들이 기억나면서 문득문득 다시 상기 시키고 있다. 문장이 되지 못한 기억들이 나에게 주는 교훈. 그렇다면 완성품으로 있지 못하는 그 조각들 또한 나에게 하나의 커다란 삶이 될 수 있겠다.

다시 그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느꼈던 것들을 적어 내려간다. 새 퍼즐 조각들은 뻑뻑해서, 처음 맞물리는 사이라 어색한지 생각했던 것처럼 한 번에 맞춰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뻑뻑함을 이상하다 느끼지 말고 자연스럽다고 하다보면 언젠가는 적당한 헐거움을 가지고 부드럽게 맞물린다. 반드시 그렇다. 그렇게 맞물린 것을 조심스레 놓아두면 그것은 떨어지지 않는다. 애초에 맞지 않으면 억지로 끼워 맞춰진다 해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왜 그땐 몰랐는지. 맞는 조각은 오래도록 맞물린 채 고정 되겠지만, 맞지 않는다면 그저 시간 지날수록 뒤틀리고 망가질 뿐이다. 사람과 사람도 그렇다.

놓치지 않을 수 있던 것들을 한동안의 기다림이 지루해 놓쳐버리는 일은 더이상 있어서는 안돼. 이것을 알게 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무엇을 놓치며 살도록 설계 되어있다. 그렇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알기 위해서 최선을 다 하는 것과, 그렇게 알게 된 것을 내가 실천하며 노력하는 삶은 얼마나 가치있는 것인지, 그렇게 되었을 때 그 값어치를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엇이든 마주보고 앉아서 천천히 시간을 들여야 한다. 그것이 상상 이상으로 넓고 깊은 것, 그래서 아득한 것이더라도 그것에서 오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 어쨌든 젖어봐야 아는거잖아. 속에 뭐가 들었는지, 깊이가 어떤지는.

어쩌면 문장이 되지 못한 기억들은 조각으로 있다가 하나의 경험으로써 작성되기 위해 머릿속에 상주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무의식 속에서 하나의 문장이 되어있는지도 모를 일이고. 이렇게 또 나는 기억을 헤엄치면서 하나를 또 배우잖아. 문득 내가 기특해지는 어느 겨울의 저녁이 되었다. 이 또한 하나의 문장으로써 기억이 되고 있는 중일거야.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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