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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Dec 14. 2018

지금

파랗게 멍든 시간들.23

한 때 전부였던 고집들이, 모서리가 닳아 없어지는 것을 보면서.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던 열망과 열정들이 점점 식어 가는 것을 보며, 덜컥 겁이 난다.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노력이 줄어들고, 점점 익숙한 것만 하고. 걸어왔던 길만 걷고, 만나던 사람만 만나면서 생각하는 것만 생각하게 되는 내가 될까봐, 그래서 더 이상 영혼이 흔들리지 않을까 봐. 그 어떤 설렘도 찾지 못할까봐.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게 될까 봐.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어린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할까 봐. 시작도 안 한 누군가의 의지를 꺾어 놓을까 봐. 겁이 난다. 이 마음이 투명하리만치 드러날 깊은 밤까지 하얀 빛을, 그 고요를, 오늘 밤도 잠들지 않고 되새긴다.

어떤 이에겐 나무가 반드시 필요하다. 잘 살기 위해서. 흐늘리는 나뭇잎을 보며 바스락 소리를 듣는 일이. 어떤 이에겐 남의 행복이, 또 남의 고통이 필요하다. 어떤 가치 없고 무고한 타인의 죽음이 필요하다. 그림자 떨리는 나무 밑에서 그런 비극을 떠올리며 어쨌든 좀 슬픈 것 같은 순간이 필요해. 어떤 사람에겐 행복이 필요해. 쏙 나무를 보듯 불행이 필요하고. 어떤 믿음이나 소망, 관용같은 이런저런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자신, 옆 사람, 어떤 사람, 아니면 크든 작든 사람을 닮은 그 무엇의 기쁨과 슬픔이, 우리에겐 서로와 비슷한 무언가에 대한 사랑이 필요해. 어떤 나쁜 마음이라도. 잘 살기 위해서. 조각난 팔과 다리, 터지고 일그러진 얼굴에 대한 말이 꼭 필요해. 그 또한 지금이기에 존재 할 뿐이야.

오늘밤은 그렇게 지금이 되었다. 마음속에 새겨둔 다짐들을 말한다. 지금. 나중에 말하면 달라진다. 예전에 말하던 것도 달라진다. 지금 말하라. 지금 무엇을 말하는지. 어떻게 말하고 왜 말하는지. 이유도 경위도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은 기준이다. 지금이 변하고 있다. 변하기 전에 말하라. 지금이 아니면 지금이라도 말하라. 지나가기 전에 말하라. 한순간이라도 말하라. 지금은 변한다. 지금이 절대적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이 되어버린 지금이. 지금이 될 수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이 그 순간이다. 지금은 이 순간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 말하라.

분명한것은 말하지 않으면 생각이 되어 흘러간다. 생각은 잠깐 찾아오고 흘러가는 존재. 그러니 말해야 한다. 문장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고 나면 머리 한구석에 자리를 잡겠지. 그저 읽고 넘기는 것이 아닌 자리잡는 것. 마음 한구석의 지금으로써 존재한다. 이 밤이 편해질 수 있다. 마음을 버려봤던 올 한해동안 내가 배운것은 그래봐야 결국 마음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 고집도 결국 마음의 일부였음 이었고, 그 모든것들은 지금을 기준으로써 흘러간다는 것. 결국 나의 마음과 생각에서 오는 모든 다짐들은 안과 밖이 없다. 그저 그렇게 존재할 뿐이다.

때때로 마음이 전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것도 지금 이 순간에 나를 채워주는 마음. 그 마음. 그래. 사람은 마음이 있어서 사람인거야. 생각이나 행동, 사고력, IQ같은 그런것들. 그런것들이 사람을 이루는게 아닌걸. 결국 모든 문화와 사회는 마음에서 시작하는거인거야. 그렇게 이해와 존중 그 모든것들이 존재하는 지금을 살아가는 내 사람들과 또 필요한것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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