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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Dec 16. 2018

눈사람

파랗게 멍든 시간들.24

생각해보면 예전의 우울했던 시간들도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지금도 우울을 달고 살고 있는 나지만. 그저 지금 나는 더이상 도망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만 계속해서 되뇌인다. 구원은 셀프인걸. 가끔 손목이 서늘해지는 감각이 되살아나고, 숨이 막혀오던 순간들에 대한 꿈이 자꾸만 잔혹한 봄으로 날 되돌리려 하지만 한번 실컷 울고나면 나아지는 나니까. 가끔 그 날들이 꿈에 나오면 식은땀을 흘리면서 일어나곤 한다. 밥을 먹다가 그날이 생각나면 먹다 말고 멍하니 어떻게 해야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아 나 밥먹고 있었지.’ 하며 다시 밥을 넘긴다. 샤워하다가도, 누군가와 이야기 하다가도 그런 증상들이 날 찾아온다. 아마 PTSD의 일종이라고 느껴진다.

나는 그저 눈사람이고 싶다. 이 기억들이 따뜻해 질쯤에 다 녹아 없어지는. 아니 어쩌면 텅 빈 욕조 위에 누워있는 존재가 되고싶다. 뜨거운 물을 틀기 전에 더 살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존재로써 나의 삶에 대한 주권이 나에게 있는 존재.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사는 이유 또한 될 수 없다. 죽어야 할 이유도 없고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 아무런 이유 없이 텅 빈 욕조 속에 누워 있을 때 뜨거운 물과 찬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어찌 되었든 나는 녹아 사라질 존재가 되는 것인데.

그 결과는 같은 것이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잖아.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점점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고싶다. 나의 사라짐은 그런 것일거야. 그렇게 녹아 사라진다면 오감이 뭉툭해지며 천천히 나도 모르게 숨을 거둘 수 있을거야. 분명 그런 생각이 잠들때 입는 잠옷처럼 나를 포근하게 에워싸고 있다.

그 날 이후로 한번도 내가 좋았던 적이 없다. 내가 원래 그러한 사람이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싫은 것 그 이상의 마음으로 자라버렸다. 나도 분명 주변인들의 말에 위로를 받아 눈물 흘리는 것과 같이 스르륵, 웃음을 지은 적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항상 고마운 감정과 미안한 감정이 공존한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것과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것은 다르다. 미안한 사이로 끝이 난다면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지금 내가 살아있음이 미안하면서 고마운걸까, 고마우면서 미안한걸까.

살아가는 이유를 만들고 싶다. 내가 조금만 안정적이면서 너와 나를 붙잡을 수 있고 각자 도움을 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에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가끔 왜 나는 자주 도움을 받고 보답할 기회가 없는건가 싶을때가 있다. 아니면 보답할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인가. 그래서 가끔 화가 난다. 그만큼 내가 이기적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고 미안할 뿐이다. “차라리 내가 선천적으로 강했다면 도움 받지 않고 스스로 쉽게 일어났을텐데.”하고는.

요즘은 자주 숲 속에 들어가고 싶다. 도시의 뻔한 냄새가 싫다. 어릴 적 맡았던 어떤 냄새들이 이렇게 귀한 존재인지 몰랐다. 내가 종종 그리워하는 것들이다. 아님 아직 어떤 그리움들을 숨기고 있는걸까. 나는 누군가에게 그리운 사람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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