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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카 Dec 19. 2018

마음을 쓰는 일

파랗게 멍든 시간들.25

‘사랑은 없어. 물론 영원한것도’ 라고 장난처럼 되뇌이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정말 사랑은 없다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다. 과거를 떠올리며 ‘아, 정말 어딘가 망가져버렸나’ 하고 슬퍼졌다. 나는 이렇게 시니컬 한 사람이 아니었고, 오히려 유쾌하진 않아도 농담은 자주 주고 받는 사람이었는데 싶어졌다. 구겨져버린 마음이 펴질 기미가 안보인다. 차라리 처음부터 이랬더라면. 뭐든 가졌다가 잃는것 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렇게 나를 위로해봤자 웃음은 나지 않고, 오히려 지금의 나를 더욱 원망하게 되어버렸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행복이었던 삶이 오늘에 와서는 슬픔이 되어버린다는 아이러니. 이 순간이 봄인가 한다면 아직 겨울 공기가 사라지지 않은 3월초의 어느 밤인듯 해.

최근에 내가 되게 염세적으로 변해간다고 하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내 사고는 부정적인것도 아닐 뿐더러 그저 ‘끝이 정해져 있으니 나름 잘 살았다고 느낄만큼만 살자.’라는 개똥철학으로 점철되었다. 이게 어떤 사고인지에 대해 타인은 날 오해할 권리가 있지만 난 해명할 의무가 없다. 그냥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면 되는거지. 이럴 때일수록 유연성은 몸에만 필요한 기술이 아니라는걸 더욱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마음엔 더 필요하다. 부러지거나 상처가 나지 않으려면 내 자리로 돌아오는 텐션이 필요하다. 이 사실을 이십대의 중간이 꺾인 지금에서 깨달았다는건 과연 늦은걸까.

솔직히 마음 없는 것들에게 마음 주지 말기가 제일 어렵다. 어떤 유연함도 익숙해지지 못한 삶에서 마음을 주는 것을 멈추는 일은 때로는 어렵고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에 움찔대다가 결국 멈출 때를 놓치게 된다. 또 바보같이 애먼곳에 마음을 두고, 혼자서 버거워 하며 밤을 지새운다. 보답따위 바라지도 않지만 그 사실을 눈 앞에 한번 더 들이밀어 버린다면 애시당초 바라지도 않은 것에 실망을 하게 되는 내가 있어서 얼마나 나는 유연함이 없는 사람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마음을 주고 멈추는게 익숙해져서 상처받지 않을 만큼만 내비추고 싶다. 내 중심을, 연약한 한 가운데를 지키고 싶다.

힘든 삶을 곱씹어 견고히 자신의 마음을 지켜낸 사람에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있어서, 나도 그런 사람들을 닮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을 닮아가려 할 수록 많은 자책과 우울 그리고 공황에 뒤섞여 힘들어했다. 너무 급하게 생각했다. 견고한 마음은 자신뿐만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지나가는 시간들이, 더 성숙해진 자신이.

모두, 사실은 마음 속에 잠들어 있는 끈적끈적한 감정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애쓰고 있는거다. 인생은 연기, 라고 나는 생각한다. 의미는 똑같아도, 내게는 환상이란 말보다 친근한 느낌이 들곤 한다. 그 저녁, 사람들의 물결 속에서 아찔하도록 그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한 사람의 인간은 온갖 마음을, 모든 좋은 것과 더럽고 나쁜 것의 혼재를 껴안고, 자기 혼자서 그 무게를 떠받치고 살아가는 거다. 주위에 있는 좋은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친절을 베풀 수 있기를 바라면서,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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