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통해 바라본다.

by Jane Anne


지금과 같은 시기에 창문이 없는 벽으로만 된 카페나 식당에 들어가려면 왠지 망설여진다.
문을 제외하고 작더라도 창문을 통해 바깥의 공기와 풍경을 데려올 수 있는 곳이 마음의 안정도 주게 된다.

만약, 우리 집에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 창문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크게 우울증에 걸렸을 것이다.
외국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 지극히 대화다운 대화를 그리워했었다. 내 눈길은 거실과 안방의 창문을 향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도로 위의 자동차들을 저기 멀리 보이는 산들의 변화를 엿보며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 집의 창문은 내가 기댈 수 있을 만큼 컸다.

어른이 된 나는 더는 신체의 변화로 세월의 흐름을 알아차릴 수가 없게 되었다. 키도 몸무게도 그대로이고, 하루하루 짙어가는 주름은 서서히 진행된다. 하지만, 창밖의 풍경들을 바라보면,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다. 하늘과 가로수들 그리고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계절을 알게 된다. 마스크를 안 쓰다 모두 쓰고 다니는 걸 보면서 지금의 상황이 심각해짐을 느낄 수 있다. 작은 아이들이 얼굴의 반을 가리고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니 새삼 마음이 아프다.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또한 창을 통해 바라다보게 된다. 좀 더 시간이 흐른다면 겨울의 풍경도, 앞동의 몇몇 집을 통해 새어 나오는 따뜻한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빛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창을 벗어나 커다란 문을 활짝 열고 가, 자유로이 활보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 새로운 카페에 간 적이 있다. 아주 작은 공원의 끄트머리에 새로운 주거공간이 생겼다. 그 아래에 커피숍이 자리하였다. 내가 가지 못한 몇 년 동안 그 공원에는 새 놀이터가 들어섰고 예전보다 예쁜 모습이었다. 그 끝에 유리창이 많은 카페가 보였다. 공원에 카페가 있어서인지 카페에 공원이 있어서인지 헷갈릴 정도로 두 공간은 서로에게 기대어 있었다. 그리고 그 매개체는 길게 늘어선 '창'이었다. 경계가 있는 듯 없는 듯 나는 두 폭의 풍경을 모두 다 감상할 수 있었다.


'마지막 잎새 '의 소녀도 창을 통해 죽음도 삶도 바라봤다. 집에서 바라보는 한 폭의 창이 세상인 사람도 있다.

나는 꽉 막힌 엘리베이터를 타고 와, 바깥의 풍경들을 여전히 보고 싶어 하는 마음에 '창'으로 눈길을 서둘러 돌린다.

사람들은 '나'라는 사람을 보는 매개체는 무엇일까? 바로 나의 얼굴일 것이다.
내 얼굴을 통해 나를 보고자 할 것이고, 나 또한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그 사람을 알고자 할 것이다.
수 천 개 , 수 만개의 알고리즘으로 연결된 톱니바퀴처럼 과학적으로 맞물려 나타나지는 나의 얼굴을 나는 오늘도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두고, 매일매일을 많은 사람과 마주치며 살고 있다. 그래도 부끄러운 줄 모르며 나의 얼굴이, 나의 표정이 어떠한지도 모르면서 살고 있다.

앞으로도 창문이 넓은 집에서 살고 싶다. 낮으로는 햇살이 잘 들어오고, 밤에는 누워서도 달빛과 별빛을 쐬일 수 있는 창과 창틀이 예쁜 집에서 살고 싶다.

순하고 편안한 얼굴을 갖고 싶다. 그 얼굴을 보고 사람들이 만만하다 생각할지라도 나는 속으로 꽉 차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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