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ane Anne Oct 16. 2020
나는 말을 한다.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다 앞에 사람이 있으면 말을 한다. 어떨 땐 말이 그냥 혼자서 나가버린다.
그리고, 나는 이제 글을 쓴다.
사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다.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도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 여러 권을 이곳의 지하실에 보관해 두고 있다. 신기하게도 까맣게 잊고 있다 일기장을 펼치면 그때의 일들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일기장을 검사하던 담임선생님의 표정까지도. 그 습관을 들여주셨던 여러 초등학교 선생님들 덕분에 나의 사춘기 때의 방황하던 마음들도 그곳에 적혀있다. 수없이 나 자신을 부정하고 원망하던 말들이 일기장에 수북이 떠다닌다. 20대의 대학생 때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다 사랑의 설렘과 기쁨 그리고 이별의 아픔에 대한 주제가 더해졌다. 직장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나의 30대는 주로 임신의 어려움과 여러 번의 실패에 따른 마음의 힘듦이 토로되어 있다.
그다음엔, 나에게 커다란 기쁨을 준 새 생명에 대한 소소하고도 위대한 일상들로 채워졌다.
나의 얘기를 하던 일기장은 꺼내본 지가 오래되었다. 그러다 남편과의 갈등으로 마음을 달래는 일기가 다시 등장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사귄 친구들과의 관계로 인한 힘듦을 글로 적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집 옆의 작은 공원을 걷다 보면 마음속에 떠오른 말들을 글로 옮기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때에는 바로 가까운 벤치에 앉아 옮겨놓지 않으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만다. 내 속에 있는 떠다니는 말들인데도 추출해서 연결해지는 건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보다.
그래서, 유명한 철학가나 작가들은 매일 일정한 시각에 산책을 하나 보다. 그 속에서 어떤 말들을 건져낼지는 겉으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글은 늘 함께였다.
그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좀 더 현미경처럼 들여다볼 수 있었고, 나 스스로 조금씩 치유해 갈 수 있었다.
나는 말을 잘 못 한다. 특히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글이 말보다는 조금 더 낫다.
나는 내 얘기를, 내 감정을 누군가를 붙잡고 모두 다 뱉어낼 수는 없다. 내 가족이어도 내 친구여도 그리고 하다못해 내 남편이라도. 그 누군가가 내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귀한 시간을 내어준다 해도 말이다.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을 말로 옮기다 보면 결국은 바닥나서 나는 나도 모르는 채 나의 치부를 드러낼 거고, 떠돌아다니는 세상의 얘기들을, 연예인들을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 얘기를 재미 삼아, 신이 나서 떠들어댈 것이다.
나 같이 소심한 사람은, 대화를 하다 실수도 많이 한다. 다른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도 한다. 어떨 땐, 헤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그때 했으면 엄청나게 웃겼을 말들이 생각난다. 다른 일을 하다 웃을 때가 그때이다.
그런데, 글도 혼자 써 놓고 다시 보다가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게 되니, 말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시간을 들일 수 있고, 여러 번 고칠 여유가 있지만, 내가 써 놓은 글은 몇 번이나 다시 봐도 '그름'을 찾아보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글 또한 말처럼 실수를 하고 만다.
그래도 또 조금씩 끄적거려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내 마음이 그러하니 또 몇 자 써보게 된다.
나는 궁금해진다.
나의 50대와 60대 그리고 살아있다면 90대에는 어떤 글을 쓰게 될지...
그때에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글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될까?
마치 꽃을 보듯, 날 보며 예쁘다, 말해줄 수 있을까?
아마도 글을 쓰다 보면, 조금은 앞당겨지지 않을까? 하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