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대가 높은 곳에서 내려와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한다. 이 나라의 수도도 지나고, 작은 표지판의 국경도 지난다. 서쪽으로 갈수록, 차 안의 온도는 점점 더 올라간다.
초록은 어디에도 어울린다. 보이는 모든 곳에 초록색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옛날 어느 때쯤부터 시작된 목축업은, 지금 내가 바라보는 풍경에 깊이 깃들어 있다. 산 아래의 나무는 전부 베어지고, 풀만 자란다. 봄부터 가을까지 소떼와 양 떼들은 배부르게 먹고, 여유롭게 지낸다. 그리고 사람들은 부지런히 건초를 만들어 둔다.
그 초록에 어울리는 색은 노란색이다. 나는 한국에서 왔기 때문에 늘 봄이 오면, 분홍색꽃이 그리웠다. 눈앞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았다. 인제야, 이곳의 봄과 여름의 색깔은 노란색이었다는 걸 깨달았다.그리고 그 노랑은 계절마다 달랐다.
초원 위로 그리고 아이들 학교 운동장에도 노란 민들레꽃이 만발한다. 딸의 책가방을 열었더니 민들레 꽃이 수북이 들어있었다. 온 옷에 물을 들였는데도 뭐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유채꽃이 활짝 피어난다. 산 능선을 따라 마치 땅따먹기를 하듯 초록색과 노란색이 펼쳐졌다 숨었다, 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초록색과 노란색만 반복해서 색칠해 놓은 것처럼.
7월에는 해바라기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태양은 강인한 줄기가 곧게 뻗어낸 수만 송이의 꽃이, 자신을 경배하는 걸 내버려 둔다. 그중 한 송이의 해바라기꽃이라도 부여잡고, 마주 보고 싶다. 그러면 꼭 행복해질 것만 같다.
옥수수밭이 대지를 장식한다.
그 옆으로는 곧 바스러질 듯한 밀밭이 보인다. 쩍쩍 갈라진 땅 위에서 바짝 마른 채로 버티고 있다. 트랙터가 지나가는 길 위로 마른 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른다. 나의 여름의 풍경에는 황금빛 밀밭이 새로 들어선다.
7월의 태양은 강한 열기를 뿜어낸다. 땅 위의 생명들은 헉헉대면서도, 뿌리는 더욱 힘차게 뻗어나가고, 줄기의 열매는 눈부신 생장을 해나간다. 사람들의 찌든 마음은 말끔해지다 못해 넘쳐서 흐느적거리고, 뛰노는 아이들은 빨갛게 익어간다. 도시의 사람들은 호수 위에 바다처럼 배를 띄워놓고, 풀처럼 뉘어져서 온몸을 태운다. 첨벙,물속까지 따라온 또렷하게 맑고 밝은 빛 속에서, 눈을 감고 둥둥 떠다니고 싶다. 어쩐지 초록은 질리도록 퍼렇게 보이고, 노랑은 태양처럼 점점 더 강렬해진다. 이 모든 풍경이 길을 따라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