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영어와 국제무역을 전공하고, 동시통역사를 꿈을 꾸며 통역일을 하던 인혜 님이 어느 날 개발자가 되어 돌아왔다. 대학 졸업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개발자로서 4년 차를 맞이했고 비교적 어린 나이에 팀장이 되어 팀을 이끌고 있다. 지난 십 년간 자신의 길을 찾기까지 새로운 시도와 경험을 멈추지 않았던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갓생을 살고 있는 인혜 님. 수많은 과정을 거쳐 자기에게 맞는 옷을 입고 한 팀의 멋진 리더가 되기까지의 스토리가 궁금했다. 개발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문과생'으로서 개발자로 전향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자기의 길을 찾으며 모험 중인 이들에게 조금은 용기가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혜 님을 만나보았다.
Q. 만나서 반갑습니다. 퇴근 후에 바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대접해주시다니 너무 감사하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먼저, 자기 소개좀 부탁드릴게요.
A.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최인혜이고요, 나이는 빠른 91년생으로 서른셋이에요. 지금은 아이디아이디 라는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에서 클라이언트 개발팀 팀장을 맡고 있어요.
Q. 개발자로 일한 지는 몇 년 되셨나요?
A. 2018년도에 처음 개발자로 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4년 차가 되었네요.
Q.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개발자로서의 첫 회사인가요?
A. 개발자로서 두 번째 회사예요. 처음 1년 8개월 동안은 서버 개발을 하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를 개발하고 관리하는 것보다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클라이언트 개발이 더 잘 맞아서 전향하게 됐어요.
Q. 클라이언트 개발은 주로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A. 서버 개발과 동일하게 코딩과 개발을 하는데요 동시에 '그림을 같이 그려내는 일'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만들고 싶어 하는 것들을 화면에 구현해낼 수 있도록 개발언어로 그려내는, 현실화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좀 어렵죠?)
Q. 뼛속까지 문과인 저에게도 낯선 개념이지만, 앱 화면을 개발하는 일이라고 이해하면 되는 거죠?
A. 네 맞아요, 이 아이콘은 휴대폰 화면에 어느 위치에 두면 좋은지를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거라고 하면 조금 이해가 쉬우실 것 같네요(웃음).
Q. 네, 아주 잘 이해됐어요! 현재 다니고 있는 아이디아이디라는 회사는 어떻게 입사하게 되셨을까요?
A. 저희 회사 대표님이 힙합 레이블을 운영하고 계시거든요. 힙합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이전부터 쇼미 더 머니와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왜 한 가지 정답만을 가지고 평가하지?'라는 의문을 가지셨다고 해요. 그런 거 있잖아요, 합격하는 기준은 딱 정해져 있고 그 기준에 적합해야지만 살아남는 구조? 1등만 살아남는 더러운 세상! 이런 거요. 그런데 대표님은 여러 가지의 색깔을 가진 아티스트를 발굴해내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Baund(바운드)'라는 힙합 장르 기반의 소셜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을 만들어 힙합이라는 문화를 다양하게 녹여내고, 한 가지 색이 아닌 다양한 색깔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한다는 기획과 가치를 추구하시더라고요. 그 방향과 가치에 저도 공감을 하게 되어서 이 팀에 오게 되었어요. 대표님, 마케팅팀, 기획팀, 투자자까지 모든 사람들이 그 가치에 공감하면서 함께 만들어가고자하는 그림을 잘 그려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죠.
Q. '한 가지 색깔이 아닌 여러 가지의 색깔을 다양하게 담아낸다'라는 말이 인상 깊어요. 음악이라는 것에 정답이 없는데 말이죠. 어떤 의미인지 저도 공감이 가네요. 이쯤에서 조금 궁금해지는데요, 인혜 님의 개발자로 전향하게 된 첫 계기가 궁금해요. 전공은 개발과 전혀 상관없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A. 맞아요(웃음). 저의 전공은 영어와 국제무역이었어요. 학문으로만 보면 전혀 개발과 상관없는 전공이죠. 대학생 때는 동시통역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2학년 때 오페어라는 해외 프로그램을 통해 영어 공부도 할 겸 미국에 베이비시터로 1년 동안 가서 살면서 문화를 경험해보기도 하고,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으니까 벡스코에서 열리는 박람회에서 동시통역사로서의 경험을 쌓기도 하고, 무역 관련된 일이나 세일즈 쪽 통역의 경험을 쌓기도 했었죠.
Q. 동시통역을 할 만큼의 실력이라면 영어실력이 꽤 뛰어나셨을 텐데, 왜 통역사라는 길을 선택하지 않으셨나요?
A. 음, 제가 영어를 잘 하기도 했고 국제무역을 전공했다 보니 해외 영업 및 세일즈 관련 통역도 하면서 다양하게 시도해봤는데, 통역을 하면서 느낀 건 제가 생각보다 남의 말을 전달하는 것에 그렇게 흥미가 없더라고요. 통역 중간중간에 어른들이 건네는 불편한 농담을 전달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기도 하고요. 뭐랄까, 누군가의 말을 전달하기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나의 언어로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영어도 하면서 세일즈도 할 수 있는 해외 영업을 내가 직접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면서 해외 영업 관련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Q. 동시통역사에서 해외영업으로 관심을 옮기신 거군요?
A. 네 맞아요. 계속해서 저에게 맞는 직업을 찾기 위해서 시도를 했었죠. 해외 영업 쪽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당시 우리가 잘 아는 ZARA, 유니클로와 같은 옷을 만드는 한세실업의 해외 영업팀에서 3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지원을 하고 일을 했어요. 제가 했던 일은 택배를 보내고, 옷감을 찾아오고, 컬러를 맞춰서 디자인팀에 제출하는 일이었어요. 처음에는 밖에서 보기에도 화려해 보이고 실제로 월급도 높은 편이었어서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일하는 직원분들이 저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도망가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저는 직무 경험을 위해서 간 거였는데 제가 당시 하던 일과 직원분들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또 한 번 고민이 됐죠.
Q.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말하면 많이 혼란스러우셨을 것 같아요.
A.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다음 스텝을 또 고민하던 중에 해외 영업 관련한 해외 취업을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학교에서 통번역 관련 업무에 관련된 문자가 왔어요. 싱가포르에 있는 뷰티 회사 사장님들이 한국에 와서 속눈썹 강의를 들을때, 제가 수업 내용을 통역해드리는 수행 통역사 역할을 하는 일이었죠. 그 일에 지원을 해서 일을 하다가 싱가포르를 가서 일을 해외영업직군으로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부모님께 PPT를 만들어서 보여드렸어요. 제가 싱가포르에 가고 싶은 이유나, 계획에 관련돼서 보여드렸고 아버지께서 비행기 값을 지원해주셨죠. 그렇게 저는 또 싱가포르로 떠나게 됐어요.
Q. 변화무쌍한 삶이에요 정말. 싱가포르에서는 원하는 일을 찾으셨을까요?
A. 아니요, 결과적으로는 아니에요. 싱가포르에서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러 갔는데 대뜸 남자 친구가 있냐고 묻더라고요. 이유를 물어보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면 해외 출장을 가야 하는데 스케줄에 무리가 생겨 힘들 때가 많을 거라는 이야기였어요. 한국과 뭐가 다른가 싶었어요. 한국에서의 그런 경험들이 싫어서 해외 취업을 고민했던 부분도 있었는데 와보니까 싱가포르도 크게 다를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3개월 동안 취업준비를 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다가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그리고 싱가포르 사람들이 외국인들에 대한 경계심도 높아서 지내는 게 쉽지 않았기도 하고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 어느 날 아빠랑 같이 얘기를 나누다가 '개발자'직업을 추천해주셨어요. 아빠가 개발자이시거든요.
Q. 아, 그러시군요! 아버님께서는 어떤 이유로 개발자라는 직업을 추천해주셨을까요? 그 조언을 듣고 바로 개발자 공부를 하기로 결정하고 실행하신 인혜 님의 생각도 궁금하고요.
A. 음, 오랜시간 저를 지켜봐 오시면서, 제가 어떤 사건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이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그 이유와 근거를 찾고 결과를 내는 성향이 있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자질이 개발자에게 필요한 좋은 성향이라고 저와 잘 맞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직업적으로도 오랜 시간 현장에서 일을 하시고 계시고 전문가로서 나이가 들어서도 일을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유익한 점이 많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믿고 존경하는 분이시기 때문에 신뢰하는 마음으로 그 조언을 믿고 한번 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 국비지원으로 자바 서버 개발에 관련된 수업을 들으면서 바로 공부를 시작했고요.
Q. 인혜 님의 실행력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A. 무엇인가 시도하는 것에 있어서 그렇게 두려움이 없는 성향 때문인 것 같아요(웃음). 그렇게 개발자로서의 첫걸음을 시작했어요. 그러다 개발자로 공부를 하고 당시 싱가포르에 다시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1년 정도 일을 하고 돌아와 블록체인 관련 일본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됐어요.
Q. 개발자로서의 첫 시작을 본격적으로 하신 거네요. 어떤 일을 주로 하셨나요?
A. 당시에 제가 신입이지만 이사님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고, 개발 이외에도 해외 법인을 세우기 위해 해외에도 다녀와야했었고, 블록체인 관련 자료조사도 많이 해야 하고 많은 일을 해야 했어요. 제가 영어도 잘하고, 문과생으로 다져진 자료조사능력 덕분에 맡기시는 일들을 잘 해냈기 때문에 신임을 많이 받기도 했었죠. 이쁨을 많이 받았답니다(웃음). 그런데 사실 저는 그 상황이 조금 힘들었어요.
Q. 어떤 부분이 힘드셨나요?
A. 저는 개발자로서 성장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개발자로서 개발업무가 아닌 그 이외의 일을 더 많이 하게 되니까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컸어요. 그리고 이 부분은 사실 제가 판단을 잘못한 부분이기도 한데요. 저에게 맡겨지는 것들을 열심히 잘 해내면 개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윗분들은 제가 개발에 대한 열정이 없다고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다른 일을 열심히 하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게 아녔거든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내어주면 제가 원하는 개발업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거였는데 제가 잘못 생각한 거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저를 좋아해 주셨고 동료들이 그런 저를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저는 너무 불안했어요. 개발자로서의 성장과 경쟁력을 키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1년 8개월 동안 일을 하다가 이직을 하기로 하고 지금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 오게 되었죠.
Q.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회사를 다니고 있으신 거네요. 정말 인혜 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자신의 업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결정하고 판단하고의 반복이 있어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A. 맞아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 회사에 왔을때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강남에 있는 빌라의 2층에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했거든요? 화장실도 남녀공용 한 칸이었는데 이상하게 뭔지 모를 편안함이 느껴졌어요. 대표님과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존중을 받는 느낌을 들었고, CTO님도 개발이 하고 싶던 저에게 '지겨울 정도로 개발을 하게 해 주겠다'라고 하셨었거든요. 개발자로서의 성장을 이루고 싶었기 때문에 저도 같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클라이언트 개발자로 일을 하면서 멘땅에 헤딩하던 시간을 지나서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Q. 정말 20대 시절의 긴 소설을 한편 읽은 기분이에요. 개발자로서 일을 하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A. 처음에 있었어요. 문과생과 이과생이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굉장히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저는 숲을 보고 나무를 보는 편이라면, 개발은 나무 하나하나를 보면서 숲을 그려나가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개발을 할 때 어떤 상황이든 동일하게 꼭 써야 하는 언어들이 있는데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일단 외워야 해요. 써야 하는 용어들이 정해져 있는 거죠. 그런 것들에 있어서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했었던 게 처음에는 조금 어려웠죠. 그리고 전공 공부를 4년 동안 깊이있게 한 것과, 국비지원으로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한 것과는 양과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그 절대적인 시간을 채우고 따라잡기 위해서 공부하고 노력하는 시간이 필요했었고, 지름길은 없다는 것을 많이 느끼기도 했고요.
Q. 그래도 계속해서 성장을 위해 공부하고 노력해서 팀장의 자리에 있으신 걸 보면 정말 그동안 성장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인혜 님은 매 순간 어떤 도전을 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어 보여요.
A. 맞아요. 개발자로 넘어오는 게 새로운 방향과 모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저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없어요. 그리고 직접 해보고 맞지 않다고 판단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저는 늘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할 때 일단 해보고 장단점을 가린 후에 얻은 인사이트를 가지고 그다음 스텝을 그려나갔어요. 전공을 선택하고, 여러 인턴과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동시통역에서 해외영업으로, 해외영업에서 개발자로 오는 그 모든 과정들이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문과생 개발자일 수도 있지만 사실 저는 하나, 둘 돌다리를 건너듯 넘어온 거거든요. 절대 뜬금없이 시작한 도전이나 모험이 아니에요. 그런 거 있잖아요. Yes Or No 게임? 그렇게 하나 둘 선택하면서 오다 보니 제가 좋아하고, 저와 잘 맞는 일을 하며 개발자로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Q. 인혜 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어떤 것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용기가 생기네요. 인혜 님의 삶을 보면 정말 수많은 야근의 반복을 하며 살아가는데 체력적으로 지치거나 힘든 순간이 많음에도 계속해서 그 시간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 있나요? 보람을 느꼈던 순간도 좋아요.
A. 월급이 많이 오를 때요(웃음). 월급이 오른다는 건 저의 능력과 실력, 어떤 가치가 인정을 받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 같아요.
Q. 솔직한 답변 감사해요. 맞아요. 조직에서 자신의 가치가 오른다는 것은 그만큼 회사의 성장에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그만큼 보람되는 순간은 없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는 직장인으로서 가지고 가는 숙명일 텐데, 어떻게 관리를 하시는 편인가요?
A. 저는 뜨개질이나 베이킹, 영상 촬영 등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공통점이 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거죠.' 저는 거기서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일의 대부분이 팀플레이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생각보다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정말 하나도 없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자와 디자이너, 팀장님의 의도까지 다양한 것을 반영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만들다 보면 처음 기획했던 것과는 멀어진 결과가 나오기도 하고요. 다 같이 하는 일이니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제가 모든 걸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있고,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것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하는 취미들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거든요. 뜨개질을 하다가 코가 빠지거나, 베이킹을 하다가 망가지거나 해도 그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요. 일단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완성하는 사이클을 한 바퀴 도는 것. 그 자체에서 힐링을 얻어요. 만든 가방이나 빵은 동료들이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마구 퍼줘도 아깝지 않아요(웃음). 그런데 팀장이 되고나서부터는 상대적으로 제가 관여할 수 있는 부분들이 좀 커져서인지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같기도 하네요(웃음).
Q. 올해 제가 들었던 스트레스 해소법 중에 가장 큰 인사이트를 얻은 것 같아요. 저도 어떤 순간에 제가 스트레스를 받고, 어떻게 하면 잘 풀어낼 수 있는지 저만의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이제 마지막 질문으로 가고 있는데요. 개발자에게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음, 영어실력이요. 개발 언어들이 영어로 만들어져있다 보니 영어권 사고 구조가 많이 들어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제가 아마 개발자로 잘 정착을 한 것에 있어서 영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과 실력이 있었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동시통역도 누군가의 말을 전달하는 일이라면, 개발자도 컴퓨터가 명령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자료들이 영어로 되어있어서 영어를 못하면 접근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언어에 대한 이해, 소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거죠. 그리고 두 번째는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요령을 부리고 싶은 마음은 도움이 되지 않아요. 뭘 해야하는지 남에게 묻기보다 스스로 질문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면서 그다음 성장을 위해서 또 다른 것을 공부해나가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해요.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요.
Q. 자기 주도적인 학습태도는 정말 어디에서 일을 하든 중요한 자세인 것 같아요. 저도 직업인으로서 게으르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인혜 님이 개발자로서 꿈꾸는 미래?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나요?
A. 아무래도 저는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고, 해외에서의 생활을 꿈꿨다보니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아가 보고 싶어요. 일을 하지만 놀면서 일을 하는 느낌이랄까요?(웃음).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보다 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 많기도 하고, 집에서의 안정감을 느껴서인지... 잘 모르겠네요.(웃음). 그래도 한 번쯤은 회사를 벗어나 프리랜서로서의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 보고 싶긴 해요.
Q. 마지막으로, 혹시나 문과생들 중에서 개발자로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마디 해주세요.
A. 저희 회사로 오세요, 제가 잘 가르쳐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