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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May 19. 2022

한 시절을 함께했던 사람이 찾아왔던 날

by your side

생일날, 4년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언니에게서 생일 축하 문자가 왔다. 몇 달 전에 너무 갑작스럽게 연락이 한번 왔었지만 근무 중이어서 길게 통화를 받지 못하고, 다음에 또 연락하자는 말과 함께 마무리해야만 했다. 그 후 얼마 전, 나의 생일이라고 또 잊지 않고 다시 연락이 왔고, 마침 고향인 부산에 내려와 있었어 시간이 맞으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한번 보자고 말을 건넸다. '다음에 내려오면 연락해!'하고 부랴부랴 끊었던 그날의 전화가 생각이 났고, 이때가 기회다 싶었다. 그렇게 며칠 뒤,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시간을 운전해서 우리 집 앞까지 찾아와 주었다. 


집 앞에 새로 생긴 치킨집에서 마주 앉아 그간 서로가 살아온 얘기를 나누었다. 장장 3시간이 흘렀는데 30분이 흐른 것처럼 느껴질 만큼 4년의 삶을 나누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만나고 보니, 서로가 보기에 예전에 만났을 때보다 조금 더 건강해진 모습으로 볼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보았던 언니의 얼굴에는 슬픈 표정이 가득했었는데, 이렇게 밝은 모습으로 변해있는 언니의 모습을 보는 게 괜스레 좋았다. 서울에 올라와 취업을 한 이후, 나의 5년을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동안 언니는 언니만의 터널을 지나면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언니도 그 시간 동안 엄청난 씨름을 하며 지냈던 것 같았다. 그래도 그 시간을 통과한 우리의 모습은 이전보다는 더욱 단단해져 있었고, 마주하고 웃으며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만남이었다. 


참 신기했다. 시절 인연이라고, 20대 초반에 만나 정말 자주 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정말 나에게 많은 것을 내어주었던 언니여서 언제든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긴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어제 본 것 같은 느낌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잊고 살다가 가끔 생각이 나 안부가 궁금해질 때 언제든 연락이 닿으면 한번 얼굴을 보자고 해야겠다고 늘 마음만 먹었었는데 볼 인연은 다시 만나 지나 보다. 문득 서로를 기억하고 함께 어느 시절을 추억할 수 있어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다시 만나서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있어서 참 감사했다.


예전에 함께 알고 지냈던 시간을 돌아보면,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언니가 어린 나이에 가정환경의 어려움을 겪으며 자라온 터라 혼자 많은 것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버거워 보였기도 하고, 늘 웃고 있는 있지만 알게 모르게 슬퍼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지만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고, 안타깝게도 슬프게도 스물다섯의 나이에 이혼을 경험하게 되면서 언니의 삶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봐왔기에 늘 마음이 쓰였던 언니였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언니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엄청 밝고, 긍정적이고, 처음 언니를 만났을 때의 통통 튀는 밝은 에너지가 뚫고 나와 나에게까지 닿을 정도였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소극적 이여진 나는, 언니를 보면서 '저렇게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서도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뭐라도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만큼 힘이 솟았다. 사람은 강하다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있다면 어떤 우여곡절이든 다 피가 살이 된다고 믿고 또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정말 긴긴 대화를 나눈 후 마무리하려던 찰나, 문득 언니가 용기 내어 나에게 건네준 말이 생각난다. 

"정말 인생의 바닥을 치고 올라오고 나서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누가 옆에 있었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그때 네가 옆에 있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더라. 그래서 최근에 네가 많이 생각이 났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만나게 되니까 너무 신기하네." (부산 사투리)

철없던 시절, 그냥 함께 옆에 있어주고 어설픈 위로와 격려를 건네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다고 하니 그때의 나를 칭찬해주고 싶고, 또 그 고마운 마음을 전해주니 참 고마웠다. 누군가의 가장 힘든 시절에 옆을 지켜주는 일이 참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도 전하고 싶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지났음에도, 다시 극복하고 일어나 누구보다 멋지게 살아가고 있어 줘서 고맙다고. 앞으로도 그렇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서 살아갔으면 좋겠다고. 다음에 언제든 다시 보고 삶을 이야기하자고. 


긴긴 대화의 끝, 두서없는 글이지만 기록하고 싶었던 만남 중에 하나였기에 기록해본다. 삶을 살아감에 있어 만나는 인연들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잃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나로서 멋있게 살아갈 수 있다고. 그러니 너무 열심히 달리려 애쓰지 말고, 너무 쉽게 지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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