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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Aug 25. 2022

낯선 타지에 마음 둘 곳이 있다는 것



'아는 사람 하나 없던 타지에서는 공간이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마음에 드는 공간을 찾는 데는 오래 걸려도 한번 마음 둘 장소를 찾으면 주야장천 찾는 것이 나의 습성이랄까'


서울 상경 3년 차였던 2019년부터 2022년이 된 지금까지 꾸준히 가는 카페가 있다. 이제 4년째 이용하고 있으니, 이 정도면 '단골 카페'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마음을 드는 것들을 찾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리는 편이지만 한 번 마음 둘 곳을 찾으면 주구장창 찾아다니는 나에게, 이 공간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낯선 타지에서 마음을 둘 곳'


이 카페를 처음 찾게 된 계기는 좋아하는 모델 '장윤주'님을 향한 단순한 팬심이었다. 모델 장윤주 님의 남편이자 trvr의 대표님인 정승민 디자이너 님이 오픈한 카페를 가면, 장윤주 님을 한번쯤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찾아간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리고 아주 운 좋게도, 카페를 오픈한 후 얼마 되지않아 장윤주 님과 피아니스트 정재형 님을 만나게 되었고, 수줍게 사진을 요청한 후 사인을 받았다. 포스와 아우라에, '괜히 실례가 아닐까?'하고 수십 번 고민하고서 건넨 '사진 한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라는 나의 요청에 '그럼요!'하고 다정하게 사진을 찍어주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특별히 장윤주 님을 좋아하게 된 계기를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믿고 살았던 나름 치열하게 살았던 대학시절, 장윤주의 옥탑방 라디오를 진행하며 '방토DJ, 위로자'라는 닉네임으로 매일 밤 따뜻하고 편안한 목소리로 위로와 격려를 건네주었던 기억이 있다. 언젠가는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고. 사연을 직접 읽어주었는데 정성어린 코멘트에 마음이따뜻해졌던 기억이 난다. 그런 분을 이렇게 만나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싶었다. (정말 모로 가도 서울로만가면 되는 것이었나!) 그렇게 나는 팬심 가득한 마음으로 '장윤주 님 만나기 목표'를 생각보다 빨리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첫 번째 목적을 달성한 그 뒤로도, 나는 카페 방문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 한 주의 일정을 끝내고 주말이 되면 '주말에는 어디를 가지? trvr'에 가서 쉬어야겠다!'가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질문이자 답변이었다. 자주 갈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조금 뜸했을 때는 2주에 한 번씩은 꼭 방문했다. 만나는 친구들마다 '이태원에 이런 카페가 있는데, 너무 좋다, 다음에 가자'를 외쳐댔고 그렇게 자발적 영업(?)을 뛰어 꽤 여러 명의 친구에게 이 공간을 소개해주었다. 좋아하면 확성기처럼 여기저기 퍼트리고 다니는 나란 사람이란. 아무도 못 말린다.

그렇게 1년, 2년, 3년이 흘러 어느덧 4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따로 또 함께 수많은 추억들이 쌓여있다.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 찾아온 것을 보면 이곳을 처음 방문했던 날, 카페의 공간과 동네의 분위기에 매료되었던 것이 틀림이 없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이 맞겠다. 복잡한 서울 도심 한복판의 소란스러움과는 동떨어진, 고요하고 차분한 동네의 분위기, 따뜻한 우드톤을 띈 쿠션감이 좋은 소파, 책을 읽고 글을 쓰기에 높이가 딱 맞는 원탁 테이블, 입구를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직원분들의 시크? 무심해보이지만 다정한 환대, 음악적 조예가 깊은 사장님과 직원분들의 bgm 플레이리스트, 내가 좋라하는 갓 구워진 초코쿠기와 베이글에 맛있는 커피, 벽에 걸려있는 아티스트 나난 님의 꽃장식, 마지막으로 사계절의 모든 풍경을 아름답게 비추어주는, 남산자락이 보이는 테라스까지. 그 모든 것에 반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예감했던 것 같다. '이곳이 나의 단골이 되겠구나'라고. 사장님 취향, 딱 제 스타일!


그런데 이곳에 오려면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이태원 역에서부터 온다고 가정했을 때, 골목골목으로 15분에서 20분가량 이어지는 높디 높은 오르막 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불편함을(?)감수하고서라도 이 공간을 찾게 된 이유에 대해서 단 한번도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정리해보았다. 분명 혼자 알고 싶은 공간이기는 하지만, 너무 좋아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누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1)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아


큰 일정이 없을 때에는 책과 노트, 맥북과 카메라를 들고 카페로 향했다. 한 시간 가량 걸리는 거리에 있는 카페를 굳이 갔어야 했던, 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당시의 2인 1실의 공간에서 낯선 서울에서 만난 누군가와 함께 일상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일에 퇴근한 이후에도, 주말에도 늘 사람들 속에서 지냈어야 했다. 4-5평 남짓 되는 공간에 2층 침대 하나와 책상 두 개, 벽에 걸린 옷걸이에 빼곡히 채워져 정리를 해도 어질러져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공간과 옆방과 복도에서 새벽까지 이어지는 생활소음이 너무나 버거웠다.


아주 가끔이나마 홀로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나에게 그 삶의 환경은 가끔은 버거웠으리라. 그렇게 집을 떠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마다 trvr 은 나에게 도피처이자, 쉼이 되어주는 공간이었다. 낯선 타지에 편하게 쉴 수 있는 내 방 한칸은 없어도, 조금 멀지만 가기만 하면 힐링이 돼서 오는 공간 하나쯤이 있다는 게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어떤 때는 집보다 편하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렇게 지난 3년간, 아침이든 오후든 저녁이든, 사계절 내내, 다양한 시간대에 이 공간을 찾았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맑으나 흐리나. 그러다 보니 철저히 혼자이고 싶어서 찾아간 곳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는 직원분들이 생겼을 정도이니까. (그분은 최근 퇴사하신 걸로 안다. 그리울 거예요!)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코로나로 두 달 정도 못 갔다가 오랜만에 다시 찾아갔을 때,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음에도 날 알아보시고는 '엇! 오랜만에 오셨네요~'하며' 건네는 직원분의 환대와 인사가 참 반가웠다. 사실 나도 오랜만에 뵈었던 것이라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겉으로 티는 못냈지만!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네'라는 마음이랄까.

정말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혼자 있고 싶어서 떠난 곳이었지만 그렇게 또 반겨주는 분이 있다 보니 그 공간이 더 내 공간이 된 기분이었다. 짧은 인사를 건네고 각자의 이유로 이 공간을 찾은 사람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사긴을 보내는 것, 고독하고 싶지만 외로움을 느끼고 싶지는 않을 때 찾아가는 곳이 이곳이 아닐까. 이 공간이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줬으면 좋겠다.


2) 귀가 호강하는 카페

평소 카페를 선택할 때 '가요, 특히나 아이돌 노래나 락, 힙합 등'의 종류의 노래를 bgm으로 사용하는 곳에는 잘 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생각하는 행위를 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잔잔한 재즈나, 그루브 있는 팝송들을 좋아한다. 팝송같은 경우는 가사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한국 가요와는 또 다르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도 영어 듣기 평가는 잘했답니다...?) 그런데 이 공간에 처음 방문했을 때 좋아하는 재즈곡이 흘러나왔고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평소 좋아하는 tony bennet 아저씨의 곡이 흘러나오는지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사실, 오래전부터 사장님의 음악적 조예가 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래전, 모델 장윤주 님 5부작 다큐멘터리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녀의 방안에는 피아노와 CD로 가득 찬 찬장이 있었다. 화려한 옷과 신발, 장식품으로 가득 찰 것이라고 예상했던 그녀의 공간에는 플랫슈즈 몇 켤레와, 청바지와 흰 티셔츠, 그리고 책장에 가득 찬 시디들이 가득했던 것이 아주 인상깊게 남아있었다. 그리고 정승민 디자이너님과 함께 출연한 부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LP판을 챙겨 와 듣는 모습을 보기도 했으니, '그냥 적당히 좋아하는 정도'는 아님을 알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그들의 음악적 취향이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여서 카페에 트는 노래들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비 오는 어느 날은 토니 베넷의 재즈 곡, 살랑 살랑 바람이 부는 어느 날에는 장윤주 님이 좋아하는 카를라 브루니의 앨범, 맑고 쨍한 활기찬 오후에는 탐 미쉬의 노래나 1990년대의 팝송까지. 어느 날에는 나를 뉴욕의 재즈 클럽에 데려다 놓고, 어느 날에는 영국의 런던 브리지 아래에 있는 펍에 나를 두고, 어느 날에는 프랑스의 어느 식당에 있는 듯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 한 공간에서 다양한 세계를 여행하는 느낌이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든다. 어느 날에는 책 한권 읽으러 갔다가 bgm 때문에 책 장을 넘기지 못학 음악 감상만 하고 올 때도 있었을 정도다.


아주 가끔은 하던 일을 멈추고 '노래 제목 찾기 서비스'를 틀어 어떤 노래인지 찾아내기도 할 만큼, 나의 취향에 맞는 노래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어서, 나의 취향에 걸맞은 노래를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라서 좋다. 부족한 언어의 한계로 계속 '좋다, 좋다'라고만 표현할 수 없는 내가 너무 답답하지만 언제나 좋다. 늘 갈 때마다 '오늘은 또 어떤 노래가 나올까'기대하며 가게 되는 곳이다. 좋은 노래를 발견하는 건 나에게 너무나 큰 기쁨이기에, 카페에 있는 LP 테이블 아래로 쌓여있는 아직 틀리지 않은 앨범들 속에 어떤 가수의, 스타일의 음악들이 있을지 궁금하다. 이번 주말은 비가 올 예정이니, 재즈를 틀어주려나? 하하



3) 아름다운 남산의 풍경을 한 컷에

마지막 이 카페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남산이 보이는 테라스다. 사계절 내내, 날씨가 어떻든지 늘 색다를 풍경을 보여주는 이 공간에서 참 많은 위로를 얻는다. 테라스에 올라서면 의자 몇 개가 있는데, 가끔 그곳에 앉아서 남산 테라스를 바라보며 동네의 강아지 소리, 새우는 소리,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아주 운이 좋을 때에는 테라스 공간에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가 있는데, 가만히 눈을 감고 편안한 의자에 기대 누워있다 보면 '한 주도 잘 살았다!' 하는 위로를 받는 기분에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테라스를 마주하고 있는 남산의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풍경들 사이로 오가는 구름들과 새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담고, 찍고, 누리고, 즐리고 듣다 보면 한두 시간이 훌쩍 흐른다. 자연을 좋아하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공간이라고 해야할까.


그동안 수많은 사계절 수많은 풍경을 담았지만, 이곳을 방문하며 봤던 수많은 풍경 중에 아직도 기억에 나는 선명한 풍경이 있다. 3년 전, 지방에 사는 나의 오랜 고등학교 친구들이 서울에 놀러 왔을 때에 이곳에 데려왔었던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 가장 친구들을 데려오고 싶었고, 한 명은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 친구이고,  한 명은 감각적인 공간의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친구였기에 이 공간을 좋아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때는 가을이었고 노을이 아주 예쁘게 지는 시기여서 타이밍도 모든 게 완벽했다. 카페에 도착해 커피를 시켜 테라스에 올라가 멋진 하늘과 풍경을 담았다.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의 바람을 맞으며 의자에 기대어 앉아있는데, 옆에 있는 친구가 슬쩍 잠이 들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매우 편안해 보였고, 마치 강아지가 낮잠을 자듯이 곤히 잠이 들어 한동안 자도록 두고 그 풍경을 누렸던 기억이 있다. 가을의 선선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 아래에 의자에 기대어 누워있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내 기억속에 어딘가에 새겨져있다. 그리고 그리고 몇시간 후, 하늘 위로 노을이 진하게 졌고, 주황색과 보라색, 진한 남색까지 색색이 물이든 하늘을 보며 감탄을 멈추지 못했다. 게다가 너무 선명하게 뜬 초승달까지. 장장 여섯 시간을 달려온 친구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풍경을 보여줄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이곳에서 쌓인 나와의 시간,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많이 담겨있어서 더욱 더 소중하고, 소중하다.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써내려가다보니, 나는 참 행운아라는 생각이 든다. 수많은 선택지가 있어도 나에게 맞는 것 그 한가지를 찾는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사장님, 이런 카페를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건물이 빽빽히 들어선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조용하고 한적한 아지트를 찾고 싶다면 이곳에 와보길 추천한다. 추천하는 시간대에는 이른 오전, 또는 세네시쯤 오후, 그리고 노을 지기 전 저녁. (언제와도 좋다는 말이다) 물론, 15분 정도의 언덕배기를 오를 각오는 단단히 해야 하겠지만 언덕을 오른 후 만끽할 수 있는 것들은 훨씬 가치 있는 것들이니까. 음악과 커피,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테라스의 풍경을 마음껏 즐기고 돌아가길. 이곳이 따로 또 함께 이 공간을 찾는 이들에게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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