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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이언니 Jan 10. 2022

밤이언니에 대해

- 운명과 욕심 아래에서

나는 2015년 9월 밤이언니가 되었다. 비 오는 날 저녁 밤이를 데려오는 순간, 밤이언니가 되었다. 제대로 말하면 밤이언니가 된 것은 아니다. 본 적도 없는 강아지가 밤이로 남게 된 것은 내가 욕심을 품은 순간들로부터 였다.


우리집에 처음 온 날, 갈비뼈가 보일 정도로 말랐고 털도 듬성듬성 자라 있었다. 눈 주변은 빨갛게 부어 올라 있었다.


남편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강아지를 불쑥 집으로 데려와서 '코가 밤모양'을 닮았으니, 이름은 밤이로 하자고 했던 순간, 어디선가 밤이를 찾고 있을 가족을 기다리면서도 그 가족이 없었으면 하던 순간, 유기동물 공고기간이 종료되고 밤이언니를 자처한 순간...


이 모든 순간들이 당시에는 운명이라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비 오는 날 저녁 밤이가 나에게 온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밤이는 나에게 욕심이었다. 밤이를 내가 보호하겠다고 데려왔고, 공고기간이 종료되기만을 기다렸다가 밤이라는 이름을 지어 내 손으로 입양 신청을 했다.


계속해서 운명이라 생각하고 살면  일인데, 나는  지금에 와서야 욕심 운운하고 있는 걸까? 이러한 생각에는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지금 밤이가 행복한 것인지 모르겠고,   수가 없다. 밤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내가 밤이언니를 자처한 것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밤이가 밤이가 되고, 내가 밤이언니가  것은 순전히 나의 욕심인 것이다. 그리고 밤이와 나의 관계를 그저 운명이라 하면 밤이 입장에서는 어떤 무력함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나는 밤이와 나의 관계를 운명으로 설명하자니,  운명이라는 말로 너무 많은 현실을 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이는 가족의 손을 놓쳤거나, 가족에게 버림 받았거나  이유가 어떻든 유기되었다. 유기동물이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이면서도 동시에 슬픈 일이기도 하다. 이렇기 때문에 밤이와 나의 관계, 내가 밤이언니라는 것은 운명 보다도 욕심으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해 보였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밤이와 나의 관계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대부분이 운명 보다도 욕심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욕심이라 하면 부정적으로 느끼기 쉽다. 하지만 욕심이라고 모두 다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나의 경우에는 적절한 욕심이 좋은 일이 되어 돌아오고, 과한 욕심은 실패 또는 반성의 경험으로 돌아왔었다.


이제는 밤이언니라는 이름으로 욕심을 내서 글을 써보려 한다. 글 쓰는데 무슨 욕심이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품고 있던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것 자체가 나를 돌아보려는 적절한 욕심이 아닐까 싶다. 이런 나의 욕심이 좋은 일이 되어 돌아올 것인지, 아니면 실패나 반성의 경험으로 돌아올 것인지에 대해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오늘은 우선 오늘의 생각을 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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