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train
비가 온다. 예상은 했는데 진짜로 말이다. 오늘은 4박 5일간의 토론토 여행을 끝내고 도시 이동은 하는 날이다. 오타와를 경유하고 퀘벡으로 넘어가는데 캐나다 대표 기차인 VIA rail을 타고 이동한다. 며칠을 내내 고민하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떠 기차를 변경할까 해서 들어가 봤는데 기차표는 이미 모두 매진되어있어 계획대로 일정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 숙소를 나설 준비를 했다. 판초우의를 쓸지 그냥 방수가 되는 코트를 입을지 눈을 뜬 순간부터 몇 시간을 고민하다 가방을 빼고 이것저것 할 생각을 해서 그냥 코트를 입었다. 어제산 초록색 토론토 모자를 쓰고 코트를 입었다. 사자마자 적셔 미안하긴 하지만 캡모자가 없기 때문에 별수 없이 모자를 쓰고 코트에 달린 모자까지 뒤집어썼다. 토론토가 첫 도시이기 때문에 최대한 별 걸 사지는 않았는데 정말 가방이 너무 무거워져서 깜짝 놀랐다. 그래도 지쳐 쓰러질 수는 없으니 마음을 가다듬고 숙소에서 나왔다.
토론토의 랜드마크인 CN타워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9번째로 높은 타워로 8위인 우리나라의 롯데월드타워와 2m 차이가 난다. 숙소문을 나서면 바로 앞에 CN타워가 보인다. 돈이 많아 뷰가 좋은 숙소를 얻은 건 아니고 다운타운 근처에 도미토리인데 아마 타워자체가 어마무시하게 높기 때문에 잘 보이는 거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래도 시야를 가리는 어떤 것들이 있지는 않아서 운이 좋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런 타워가 오늘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비가 오기 시작한 어제도 아주 잘 보였는데 말이다. 마지막을 보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토론토아일랜드에서 본 끝내주는 야경의 모습으로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추적추적 비를 맞아가며 UNION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은 캐나다가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캐나다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벌인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를 이끌었기 때문에 나라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영국의 영향이 제일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비가 많이 오는 영국의 건축양식이 조금은 영향을 받은 건진 모르겠지만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종종 있었다. 불안한 게 싫어 일부로 기차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왔기 때문에 비를 피해 쉬어가다 기차역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 남기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비는 많이 오고 부탁할 사람도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기차역에 들어섰다. 안내가 잘 되어있어 기차를 타는 곳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는데 이른 아침에도 도시이동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분명 추울 거라고 했는데 목티가 축축이 적셔지고 있음이 느껴졌고 온 짐을 짊어지고 서서 기차 탑승시간을 기다리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이내 표검사를 하고 기차에 올라탔다.
모든 이들의 인사말 끝에 happy holidays, wish your merry christmas, happy christmas라는 낭만이 붙는다.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는지 며칠이 남았는지 크게 표시해두고 기다리는 도시, 모든 인사에 낭만을 불어넣어 주는 도시, 난 이제 이 도시를 떠나 퀘벡으로 향한다.
9:52 am
기차가 달리는 동안 거의 storm 수준의 바람이 불어 몇 번을 섰다 달렸다 반복했다. 배가 고파 가방에 있는 Lay’s를 주섬주섬, 뭘 사 먹을까 하다가 아침부터 비를 쫄딱 맞고 기차에 올라타는 바람에 기운이 없어 거의 두 시간은 기절을 했다. 여섯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도착한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 수도인데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 도시는 퀘벡주와 온타리오주 가운데에 있는 도시로 수도를 정할 때 영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토론토와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퀘벡이 너무 문화가 달라서 가운데에 있다는 이유로 수도가 되었다. 어부지리.
원래는 짧게 오타와를 둘러보고 퀘벡으로 넘어가는 게 일정이었지만 너무 늦게 도착하기도 했고 가방을 맡길 곳도 그리고 날씨도 너무 안 좋다. 기차에 내리기 전 백팩을 들쳐 메는데 뒤에서 Wow라는 소리가 들린다. 미안하다 한마디 했더니 ‘happy Christmas and your trip’라고 인사를 건넨다. 미소를 머금고 플랫폼에 들어섰다.
창문건너에 들어가는 입구를 바라보며 누군가를 찾는 눈빛을 한 사람들이 있다. 그 누군가를 발견했는지 활짝 웃으며 손을 한껏 흔든다. 크리스마스시즌이라 누군가 가족을 만난 거겠지, 왠지 부러운 느낌. 외롭다가도 그 모습들을 보니 한껏 미소 지어진다.
캐나다에 도착하고 처음 눈이 온 날이다. 사실 배가 고파 아무 생각도 없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캐나다 날씨를 실감할 수 있겠지. 오늘은 숙소에 도착하면 한국에서 챙겨 온 짬뽕밥을 먹을 거다. 참 빨래도 해야지. 그나저나 숙소에 갈 수는 있으려나.
DEC23,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