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liesu May 28. 2023

22. 여행메이트와 재회

Sanfrancisco, USA

시애틀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넘어온 어제 내게 제일 소중한 여행메이트인 다현이를 만났다. 다현이는 23살쯤 호주에서 룸메이트였던 친구인데 방계약에 문제가 있어서 1-2일 정도 함께 방을 쓰기로 했다가 성격이 잘 맞아 다현이가 한국에 돌아가기 전까지 함께 방을 썼고 그 이후에도 세 차례 해외여행을 함께하고 수차례 국내여행을 한 찐 내 여행메이트이다.

코로나도 터지고 이제는 삼십 대가 되어버린 우리가 함께 해외여행을 하는 건 17년도 겨울 러시아 이후 햇수로는 육 년 만이었다. 그녀가 오는 게 믿기지도 않았지만 온다고 하다가 못 오겠지라는 생각도 컸다.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는 그녀가 원래 그래서는 아니고 이 여행을 함께하려다가 못하게 된  경우가 세 번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의 불안한 경우도 있었지만 우리는 결국 이렇게 함께 여행을 왔다.


노을이 진 후 숙소 밖에서 돌아다니는 일이 이번 여행에서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는데 내가 샌프란시스코에 해가 지고 도착하기도 했고 그녀를 만나고 든든한 마음이 생겨 함께 장을 보러 트레이더조로 향했다. 그녀의 시그니처 음식인 파스타를 해 먹고 함께 과자도 먹고 수다도 떨으며 아쉬운 첫째 날 밤을 보냈다.


여행을 했던 해외의 도시를 다시 여행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다시 온 이유는 내가 미국의 동부보다는 서부를 더 사랑하기도 하고 오 년 전의 내가 이 도시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녀와 늦지 않은 아침에 눈을 떴다. 하루 만에 사랑스러운 이 도시를 전부다 눈에 담을 수는 없겠지만 시간이 많지 않은 그녀를 위해 오늘은 샌프란시스코의 대표 랜드마크 두 곳에 가기로 했다.


오 년도 더 된 기억을 더듬어 그녀를 안내하려는데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는 그 전과는 사뭇 달랐다. 다운타운의 큰 길거리에는 아침부터 비눗물을 뿌려가며 청소하는 청소차가 지나갔고 거리의 가로수를 보듯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노숙자를 볼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로 노숙자가 많아지기는 했다지만 이렇게까지 많아졌을 줄을 상상도 못 했으며 너무나 달라진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에 적응하기는커녕 노숙자가 내 옆을 스칠 때면 긴장감에 숨이 턱턱 막히기까지 했다. 그녀가 찾은 카페에 들러 빵 한 조각씩 사가려다 골목길에 들어선 순간 정신이 나갈 뻔했고 그녀는 나의 보디가드인 것처럼 나를 지켜주었다.


조금씩 다운타운과 멀어지고 민가와 가까워지니 노숙자흔적도 점차 사라져 갔고 나의 긴장감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길눈이 밝은 나는 조금씩 거리가 익숙해졌고 완만한 언덕을 오르고 올라 Alamo square에 도착했다. 알라모 스퀘어에 간 이유는 the painted radies를 보기 위해서였는데 그 외에도 알라모 스퀘어에 가면 샌프란시스코 시티를 한눈에 볼 수도 있고 공원 형성이 잘 되어있어 쉬어가며 커피 한잔 하기 정말 좋은 곳이다. 내내 비가 온다던 샌프란시스코의 하늘이 바다 냄새가 날 정도로 푸르다. 숙소에서 나설 때부터 알라모 스퀘어에 오면 경치가 정말 끝내줄 거라고 생각했다.

일렬로 늘어선 7채의 빅토리아풍의 주택을 배경으로 육 년 전의 나처럼 폴짝폴짝 뛰어봤다. 그때와는 다른 계절에 잔디가 다 물에 적셔져 있어 넘어지기도 했지만 흙이야 털면 그만이었고 이곳에 또다시 있다는 사실 자체로 모든 것이 괜찮았다.

더페인티드레이디스는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에 3가지 이상의 페인트 색상으로 지어진 유서 깊은 주택을 의미하는데 샌프란 시스코 곳곳에서 유서 깊은 주택을 볼 수 있지만 각종 영화와 매체에 널리 알려지면서 더 유명해졌다. 빅토리아 시대에 주택을 소유한 많은 사람들은 해군에서 남은 전함 회색 페인트를 사용하여 집들의 색이 칙칙하기도 했지만 2차 세계대전이 지나고 1960년대에 한 예술가를 통해 집들의 색상이 변경되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그녀와 함께 사진도 찍고 여행지를 즐기며 한참을 함께 웃었다. 그리고 우린 pier39로 향했다. 항구 도시인 샌프란 시스코는 선착장 주변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꽤 찾을 수 있는데 pier39에는 몇 개 안 되지만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도 있고 바다사자 무리를 볼 수 있는 공원도 있으며 많은 레스토랑과 기념품가게들이 즐비해있다. 또 과거와 같다면 공연을 하는 버스커들의 노래도 감상할 수 있고 조금은 어수선하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미소가 지어질 수 있는 풍경들을 마주할 수 있다.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과거의 기억들이 겹치면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왔던 도시에 또 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싶으면서 동생이 그립기도 했고 혼자 다시 찾아온 게 미안하기도 했으며 나와 함께해 준 또 다른 동생인 그녀에게 고맙기도 했다. 캔디샵에 가서 집히는 대로 캔디를 구매하기도 하고 과거에 갔던 기념품샵에 가서 더욱더 비싸진 물가에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예전엔 있는 줄도 몰랐던 바다사자 무리를 보고 대왕 민달팽이 같다며 사자 무리의 자리싸움을 구경하기도 했고 각자의 색을 햇빛아래서 쨍하게 들어내는 그곳을 한참을 담았다.


끝내주는 저녁을 먹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녀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눈앞에 그녀가 있는데도 믿기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내내 걱정하는 그녀의 마음이 안쓰러웠지만 나와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부디 온전히 이쁜 미소만을 지어보길 혼자 바랬다.


직장인인 그녀가 나와 이 여행을 함께하기 위해 내준 용기와 시간에 너무 고맙기만 하다. 내가 얼마나

고대했는가 그녀는 알까. 핏줄이 이어진 인연은 아니지만 어쩌면 피보다 더 돈독한 인연이 있을 수 있다는 걸 그녀를 통해 느끼곤 한다. 이 여행이 끝날 때쯤 그녀에게 온 마음을 담아 내가 많이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고 마음을 전하고 싶다.

Jan 17, 23

작가의 이전글 21. 낯선 곳에 스며들고 있는 이방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