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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su Jul 20. 2023

23.7.18 나의 상담 일지_3a

나를 찾아가는 길

영감이라는 거 옛날엔 조금은 오그라드는 감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진짜 있는 게 아닐까?


상담이 끝나고는 뭔가 상쾌한 기분에 글의 머리말에 쓰고 싶은 문장들이 마구 생각났다. 비가 와서 우산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핸드폰에 메모를 해놓지 못했는데 글을 쓰려니 연기처럼 기억에서 잊힌 걸 보면 특별한 생각을 메모하는 일은 이렇게 적어 내려 가는 일은 참 중요한 일임에 확실하다.


어쩜 상담날마다 비가 올까 신기하기도 했다. 선생님과 나는 상담의 첫 한마디를 날씨이야기로 시작하기도 하는데 오늘은 비가 많이 와 알바를 하는 동안 집에 물이 센 이야기 대화를 시작됐다. 충주에도 넘쳐나는 하천물에 휩쓸려 한 분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자연재해 앞에 인간의 하찮음에 대하여 물꼬가 트였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생각지 못한 사고로 더 큰 허무함을 느낀다. 예로 들면 세월호 같은 사건들 말이다.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들로 생명을 잃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내게 전혀 무관한 사건임에도 한참을 장마같이 우중충하게 살았던 과거가 있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가족에게 표현을 좀 더 자주 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다. 사람일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당장 이 글을 쓰고 집에 가는 길에 사고가 나서 죽을지도 모르는 게 정말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우리의 인생인데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씩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이야기해야 죽는 순간에 큰 후회를 하지 않을 거 같았고 평소에 아끼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일은 따뜻한 일에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뜻함으로 관계를 채우면 좋지 않은가,


가족이야기를 하는 나를 보고 선생님께서는 사람이 성숙해지기까지는 이해와 슬픔과 감사 동정 등등 많은 감정들을 느끼고 견디면서 가슴이 뒤집어지기 마련인데 이 젊은이가 어떻게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쉽지 않았을텐데 어떻게 그 과정을 다하고 왔을까 궁금했다고 하셨다. 나는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해를 하기보다는 동정이라는 감정이 더 크게 소리를 낸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랬으니까 이랬겠지, 이랬으니까 이해하자.. 근데 선생님의 질문을 듣고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해를 한다고 했는데 그럼 또 그래도 괜찮나요?'

이 질문을 듣고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이해를 했어도 그러면 안 되긴 하는데... 나의 반응에 선생님께서는 수연 씨는 빨리 정리하고 상황을 치우려고 하는 거 같은데 도대체 무엇을 느끼지 않고 싶어서 부딪히고 싶지 않아서 상황을 정리하려고 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


언젠가 화가 쌓이고 쌓여 앞뒤 안 보고 폭발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내가 싫어서인 것 같다고 했다. 잘 정리해서 아무런 문제 없이 상황을 정리하고 싶은데 지금까지 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의 해결 방법은 그냥 말 안 하고 정리하고 넘기는 거뿐이지 않았던가. 이건 분명 내게도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타인에게도 좋은 방법은 아니었던 거였다. 더 좋은 방법은 없고 그냥 그대로 나의 생각이나 느낌을 그대로 말하는 게 가장 세련된 감정 전달임을 이제야 깨달은 거였다. 아니 이제라도.


아마도 한참을 됐을 나의 우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마도 제일 우울감이 느껴질 때가 언제냐고 물어보신 거 같았는데 나는 혼자 아무것도 안 할 때라고 답을 했다. 나는 통상적으로 매일 혼자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유산소 운동 (수영, 러닝, 산책)을 하거나 좀 괜찮을 때는 책을 읽고 아니면 항상 술을 마신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알코올의존증이 있는 거 같다고도 하셨는데 딱이 그 말에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요즘엔 좀 줄이기 위해 다른 행동들을 하고 있다고도 말씀드렸다. 혼자 있는 게 왜 싫으냐에 대한 질문에 딱히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냥... 혼자 있는 게 싫다기보다는 아무것도 안 하고 혼자 있으면 나는 쓸모없는 인간인 거 같고 생각이 너무 많아지는 것도 생각의 꼬리가 꼬리를 무는 것도 머리가 복잡해져서 싫고 누구에게도 찾음을 받지 못하고 외로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나는 자기 전의 시간이 제일 힘들다고 말씀드렸다. 그래도 내 일상 계획표를 보여드렸는데 이렇게까지 계획적인 예술가는 지금까지 상담을 한 경력 중에 처음 본다고 하셨다. 나도 모르게 뿌듯함을 느꼈다.


고독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이하면 어떨까, 도대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언제인가. 생각이 꼬리를 물도록 그냥 내버려두어 보는 건? 잠이 오지 않을 때는 꼭 잘 자야 돼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안 자고 버텨보는 건? 선생님과 고독함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시간 속에서 감정컨트롤을 하고 어떻게 지내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생각이 꼬리를 물면 도대체 얼마나 생각을 할지 한번 끝까지 생각을 해보고 같은 생각을 한다면 그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한번 세어도 볼정도로 끝장도 보고 굳이 자려고 애쓰지 않고 졸리지 않다면 자지 않고 다음날을 보내보면서 나의 감각, 생각, 마음들을 그냥 풀어놓아봐야겠다고 말씀하셨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내 몸은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들어보는 거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은 심장에 있고 생각은 머리에 있다고들 하는데 사실 마음이나 생각은 어디에 있는 지는 알 수가 없다. 몸의 반응에 따라서 움직일 뿐, 하지만 둘의 차이점은 마음은 나를 속일 수가 있다는거다. 계속해서 이럴 거야 이럴 거야 마음먹으면 정말 그럴 줄 알듯이 말이다. 그래서 지금 감정을 잘 못 만나고 이성에 통제되어 있는 내겐 마음의 소리 말고 몸의 소리를 들어보는 게 제일 현명하게 나를 만나는 방법이었다. 불안, 고독의 끝엔 뭐가 있을지 들여다보고 솔직한 몸의 소리를 들어보는 거 말이다.


상담을 하고 처음으로 새벽러닝을 했다. 오늘은 졸리지 않으면 잠에 들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러닝을 뛰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가득한 지렁이들을 보고 전속력으로 달려 집에 왔더니 샤워를 하고 침대에 몸을 대자마자 기절을 해버렸다. 간혹 이렇게 내 몸을 혹독하게 굴리는 것도 숙면에 꽤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잊지 말자. 그냥 그대로 나의 생각이나 느낌을 말하는 게 가장 세련된 감정 전달임을, 또 마음을 끝까지 들여다보고 솔직한 몸의 소리를 들어주는 것. 그렇게 나를 찾아가는 길임을.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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