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탱하는 방법

by 느림주의자

분명 어제 운전대를 잡다가 첫 문장으로 쓰고 싶은 말이 뇌리를 싹 스쳤는데 미루고 미루다 글을 쓰려하니 도무지 그 문장이 기억나지를 않는다. 그렇게 또 깨닫는다. 쓰고 싶은 문장은 바로 메모를 해둘 것.


얼마 전 외국인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된 날씨어플이 있다. ‘windy’라는 어플인데 기본 날씨 어플을 통해서는 짐작이 불가한 제주의 바람과 바람의 방향을 아주 잘 맞춘다. 제주도 며칠 동안 날이 흐리고 온도가 많이 내려갔다. 물론 바람도 말도 안 되게 불었다. C는 최근 날씨에 대해 아쉬움을 내비치는 내게 ‘이러다 또 더워져.’라며 4년 차 제주 도민의 쿨함을 보여줬다.


제주에 이주하고 한동안은 매일 아침 달리기를 했다. 달리지 못하면 송악산 등산로라도 걸었다. 몸을 움직이고 아침에 땀을 흘리니 살아있음을 느꼈고 이곳에서의 삶이 만족스러웠었다. 그리고 발바닥에 무리가 갔는지 족저근막염이 다시 재발됐고 나는 두 달째 뛰지 못하고 있다. 사실 날씨 어플을 잘 확인하는 편은 아닌데 동굴에 들어가고만 싶은 요 며칠의 나를 바라보며 좀 더 다른 일상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고, 어플을 깔았다.


뛰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지만 제주에 온 김에, 기한은 없지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더 즐기면 아무래도 무언가를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렇게 글을 쓴다던가 그림을 그려서 내 작업으로 남긴다던가 아니면 기억에라도 남길 수 있겠지. 그래서 생각한 게 올레길 걷기였고 그래서 어플을 깔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어플에서는 제주 전체가 파란빛을 하고 있었다. (파란색은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다는 뜻이다.)


작업실에 수업도 없고 펜션청소 알바까지 없는데 날씨까지 좋다니 오늘이 첫 올레길을 걷기에 아주 좋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서귀포에 있는 올레길 여행자센터에 가서 올레패스포트도 새로 발급받아 서귀포시내 근처인 7번과 7-1번 올레길을 하루 종일 걸을 생각에 설레는 기분까지 들었다.


그리고 어제 작업실에서 수업을 끝내고 문을 열다가 문 모서리에 엄지발가락이 세게 찌였고 그렇게 나는 지금 또다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발을 가지게됐다. 엄지발톱이 들려서 피가 철철 났고 병원에 가서 깁스를 했다. 양말을 못 신어서일까, 왜인지 날씨는 더 추워지는 것 같았고 기분은 또다시 우울의 색으로 번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병원에 들러서 소독을 받고 어젯밤에 찾아둔 딸기케이크를 파는 카페에 왔다. 바로 작업실에 갈까 했는데 이렇게 좋은 날 작업실에만 있으면 억울할 것 같은 나를 달래기 위해서였다. 보통 생크림 케이크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어젯밤에 갑자기 이상하게 맛있는 딸기케이크가 먹고 싶었다. 카페에는 계절 때문인지 딸기 생크림이 아닌 귤 생크림 케이크가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뺑오 스위스가 있어서 괜찮았다.


계절을 따라 조금은 차가운 바람이 살짝 불었지만 햇살이 따뜻해 야외에 자리를 하고 오랜만에 책을 폈다. 지난 글들을 쓸 때보다 더 무기력함이 심해져 책은 정말 오랜만에 마주하는 거였다. 최진영작가의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은 은은하게 나의 마음을 울려댔다. 뜨거운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 파란 하늘에 주변에 온통 푸른 것들이 가득한데 좋아하는 빵에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으니 이런 게 사는 게 아니면 어떤 게 사는 기분을 느끼게 할까 싶었다.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책 한편에 만년필로 적어내려 갔다.

‘글쓰기로 나를 지탱한다…….(생략) 나는 무엇으로 나를 견딜 수 있을까’

20251122 1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