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떠나서인지, 아니면 꽉 채워진 나의 일상이 비어질 것을 알아서인지, 아니면 함께 했던 것들이 벌써부터 그리워질 거란 걸 알아서인지, 아니면, 그냥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나의 마음이 텅 비어졌고, 슬펐다는 거다.
이별은 언제나 힘이 든다. 그게 연인이든 친구이든 어떤 관계이든지 말이다. 그래서인지 제주에 살게 되고 누군가 온다고 하면 어지렵혀지더라도 꽉 채워져 있던 나의 작은 집과 함께 여행의 색으로 물드는 나의 일상이 무서워졌다. 아니 그것보단 누군가 떠나고 나면 고요하고 공허해지는 그 후가 나는 두려웠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 혼자 파악해 본 나는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 같았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미 끝내야 할 사이임을 잘 알면서도 마무리 짓고 혼자가 될 일상이 두려워서 끝내지 못한 관계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실 이번에 A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떠난다는 걸 알면서도 그냥 그날이 오지 않기만을 바랬던 거 같다.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그냥 눈을 가리고 있었던 거 같다.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마무리 짓는 건 아쉬운 일이지만 여행자와 머무는 사람의 관계에서 어쩔 수 없는, 그러니까 그럴만한 거였다.
어제는 문득 혼자가 된 게 너무나 어색해서 갑자기 떠난다는 A의 소식을 듣고 집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틀어놨다. 씻을 때도 청소할 때도 빨래를 정리할 때도. 누군가와 대화하는 일이 적은 혼자인 이곳에서 사람의 소리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영화를 보다 감정의
소용돌이에 지쳐 잠에 들고 아침이 왔다. 기분이 조금 괜찮아지고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준비가 된 거 같았다.
펜션청소를 하는 내내 머릿속엔 우울이라는 단어가 떠나질 않았다. 좋아하는 노래들을 들으면서 청소를 하기는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노래들의 상황에 나를 맞추는 기분도 들었다. 빌어먹을 영어가 늘어버려서 팝송도 이제는 해석이 돼서 잘 들리는 바람에 못 알아듣는 가사의 노래를 듣고 싶어도 그게 잘 안된다.
사실 이제는 제주에서 진짜 나의 생활을 찾을 차례인 거 같기도 하다. 이사했다고 놀러 올 지인들은 거의 다 왔다 가고 이제는 좋아하는 장소도 식당도 어느 정도 네비를 켜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수준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무서운 건 누군가와 함께했던 어느 곳에서의 추억이 그대로 있다는 거다. 내가 좋아했던 집 앞 바닷가에 가서 책을 읽을 때도, 조용하고 실내인테리어가 이쁜 카페에서 라테를 마시며 책을 읽을 때도, 집에서 영화를
볼 때도, 이쁜 하늘아래 있는 바다를 볼 때도 말이다.
헤어짐에 익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 아마 평생 익숙해질 일은 없겠지만, 그게 무뎌지는 어른이 되고 싶다.
2025 11 26 1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