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이혼사이'의 마지막,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
2023년 1월 초
'결혼과 이혼사이 #11. 지독한 그림자'편에서 독자님들께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
6개월 동안 안 뵈었던 시어머니와 한 번만 만나서 이야기해 달라던 남편의 부탁에 어떻게 하면 좋을지 대해서였다.
정말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댓글로 혜안을 주셨고
수십 번, 수백 번 댓글을 정독하고 생각을 정리한 후,
시어머니께 문자를 보냈다.
"어머님, 얼굴 뵙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녀는 내가 죄송하다고 말하길 바라고 있겠지만,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시어머니와의 약속 당일까지 어떻게 내 생각을 간결하면서 정확히 말할지,
최대한 그녀의 기분이 불쾌하지 않도록 대화를 할 수 있을지 매초, 매시간, 매일 고민했다.
그녀에게 과거 일을 들추며 사사건건 불만을 이야기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앞으로 시어머니와 내 관계를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말하고 싶었고,
나를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해 달라는 것을 이해시키고 싶었을 뿐이었다.
남편에게 시어머니와 만나보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내게 한없이 고맙다고 하였고, 이야기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여전히 이야기가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적인 생각을 하는 그에게 순간적으로 화가 나 그에게 말했다.
"고마워할 필요 없어. 죄송하다고 말하려고 뵙자고 하는 거 아니거든.
고마워하는 대신, 내게 미안하다고 생각해"
2023년 1월 중순
강남의 어느 조용한 카페.
시어머니와 단둘이 만났다.
"어머님, 제가 오늘 어머님께 뵙자고 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절 며느리가 아닌 수혜로,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어머님의 며느리이기 전에, 저의 부모님 딸이고, 제 부모님 딸이기 이전에,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부심 있게 열심히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러니 저를 어머님의 며느리, 그 정도로 생각하지 마시고 존중받아야 할 대상으로 바라봐 주세요.
두 번째는 제 남편에게 다시는 저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지 말아 주세요.
저도 앞으로 할 말이 있으면 어머님께 직접 말씀드릴 테니, 어머님도 저에게 직접 불만 이야기하셔서 당사자들끼리 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이 말을 하자 조용했던 카페가 더 조용해졌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첫마디를 했다.
"나는 네가 만나자고 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안부인사 먼저 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그런 말도 없니?"
그녀 때문에 본인 아들이 이혼하게 생겼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첫마디의 수준이 너무 낮아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했던 말씀은 "주변 아줌마들이 며느리들 흉보면서 당돌하다고 하던데, 너 정말 당돌하구나?"였다.
2시간 동안 대화를 했고 결론은 간단했다.
본인이 나에게 무례하게 했던 언행들은 모두 기억이 나지 않으며, 중간에 기억나는 것이 있긴 하지만 그건 시아버지의 행실이 못마땅해 어쩔 수 없이 내게 불똥이 튀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본인의 언행에 내가 상처를 받았을지언정, 좀 더 오랜 기간 동안 본인에게 더 잘해보지 그랬냐는 것이다.
결국, 모두 다른 사람 탓이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것은 내 남편이 단 한 번도 시어머니께, 내가 힘들어한다는 것을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와 남편이 자주 싸우는지도 몰랐다고 하셨다.
덧붙여하셨던 말씀은 '원래 결혼 초에 자주 싸우면 나중에 안 싸워서 괜찮아'였다.
본인 때문에 울고 불고 싸웠던 아들과 며느리에게 할 소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나는 시어머니와의 대화를 남편에게 빠짐없이 전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물었다.
"어머님한테 그동안 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우리가 이혼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 오빠한테 들은 적이 없으시다던데?"
남편은 황당하다며 시어머니와 수십 번, 수백 번 이야기하고 싸우며 중재했다고 대답했다.
시동생도 옆에 있던 적이 많으니 당장 전화해서 본인의 결백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치매는 아닐지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닌가.
비로소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그녀가 1년 6개월 동안 내게 했던 모진 말들과 행동, 내 부모에 대한 험담과 비하는 전혀 기억이 안 날 만큼 하찮았던 것이거나, 아니면 지독한 자기 방어에 잡아 먹혀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이거나, 또는 실제로 기억을 지운 것이다.
그 어떤 이유라도 내게는 용납되지 않았다.
그리고 상처 준 당사자는 기억조차 안나는 일들로,
행복한 신혼을 보내야 할 나와 내 남편이 그토록 많은
시간을 서로 싸우고 비난했던 것에 너무나 억울해 눈물이 나왔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이 시간 이후로, 어머님 때문에 오빠와 내가 싸우는 일은 두 번 다시없어'
이후 다시 시댁에 가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4월 초인 지금까지 내게 그 어떤 언행도 하지 않고 있다. 아니, 서로 눈도 안 마주치고 대화를 아예 안 한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를 존중해서가 아니라, 두 번 다시 '당돌한' 내 모습을 보기 싫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시댁식구 모두가 알면서 모른 척, 답답하지만 괜찮은 척하면서 문제를 잠시 안 보이는 곳에 숨겼을 뿐이다.
여전히 난 얕게 얼은 강을 건너듯, 결혼 생활을 불안하게 유지하고 있지만 언제 그 얼음이 깨져 우리 결혼에 흠이 날지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다만 하루하루 남편과의 평온함과 사랑에 감사하며 살뿐이다.
앞으로 쉽게 끝나지 않을 이 이야기는 종종 독자님들께 말씀드릴 것이다.
부디 이 끝은 해피엔딩이길 바랄 뿐이다.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작가 수혜입니다.
먼저 제 이야기를 본인 일처럼 걱정해 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이 부족한 저의 글이 무겁게 다가가지 않았을까라는 걱정이 됩니다.
앞으로 직장과 연애 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찾아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궁금해하실 독자님들을 위해 ‘결혼과 이혼사이’ 시리즈도 종종 업데이트하겠습니다.
제게는 한 없이 든든한 독자님들,
항상 감사드리며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