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VS 적당히

-문제가 없는 엄마와 딸은 없다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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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사이좋은 모녀가 세상에 얼마나 될까. 나는 때때로 딸의 걸림돌이었다가 또 가끔은 열렬한 지지자로 변신했다. 딸로 인해 자주 삐치고 토라졌지만, 아무리 속상해도 ‘미안해, 사랑해’라는 말 한 마디면 서운함이 스르르 풀렸다. 그렇게 혹독한 첫사랑을 앓으며 나는 ‘엄마’가 되었다.


딸은 내게 가깝고도 먼 당신이다. 사랑하지만 나와는 너무나 다른, 이해하기 어려운 종족이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명료한 것을 선호하는 나는 불편한 생각을 오래 담아두지 않는다. 한 번에 한 가지씩 생각하고, 닥친 일에만 집중한다. 덕분에 큰 스트레스가 없는 편이다. 반응이 더디고 늦된 탓에 간혹 일이 꼬일 때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긍정적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딸은 남편을 닮아 생각이 너무 많다. 굳이 안 해도 될 생각을 많이 하고, 그런 생각들이 계속 가지를 쳐 끝간 데 없이 뻗어나간다. 좋게 말하면 상상력이 풍부하고 나쁘게 말하면 염세적이고 비관적이다. 어떤 경우든 딸의 생각은 긍정적 전망보다는 부정적 예측이 다수니까. 그래서인지 악몽을 꾸거나 가위에 눌릴 때가 많고,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불면증이 심해졌다. 게다가 불면은 거의 대부분 우울을 동반하니 자연히 딸의 심신 역시 피폐해졌다.




이렇게 서로의 생각과 성향 차이가 극심하고 세대 차이마저 크다 보니, 우리의 관계는 늘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곤 했다. 그 대표적 차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마도 ‘열심히’와 ‘적당히’가 아닐까 싶다.


19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나의 머릿속은 ‘뭐든 열심히 해야 성과가 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늘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점을 받고, 열심히 스펙을 쌓아서 좋은 기업에 취직하고, 열심히 일을 배워서 커리어를 쌓고, 열심히 노력해서 돈도 많이 벌고 성공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곤 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은 대개 나와 비슷한 사고의 흐름을 가졌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2000년대에 태어나 2020년대에 대학 생활을 한 딸은 왜 뭐든 ‘열심히’ 해야 하는지를 납득하지 못했다. ‘열심히=소모적’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적당히’ 공부해서 학점을 따고 워라밸이 보장되는 일자리에 취직해 적당한 돈을 받으며 적당히 살아가겠다는 게 딸의 생각이었다. 성공이라는 큰 꿈을 그리기보다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얘기다. 대학 졸업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참 동안 두문불출하다가 얼마 전 동영상 편집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딸이 내게 털어놓은 얘기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엄마, 나 요즘 옆자리에 앉은 애 때문에 되게 불편해. 걔는 나랑 다르게 뭐든 열심히 하고 작업 완성도를 높이는 데 관심이 많거든. 그래서 매번 주어진 시간을 오버해 작업하다가 다음 수업을 놓칠 때가 많아. 문제는 그래 놓곤 나한테 자꾸 놓친 수업 내용을 물어본다는 거야. 정말이지 귀찮아 죽겠어. 그냥 나처럼 적당히 하면 되지, 그렇게 열심히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딸이 말하고자 한 핵심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옆자리 애가 나를 귀찮게 해서 불편해’였지만, 내가 주목한 건 ‘적당히 하면 되지 왜 열심히 하지?’였다. 아마도 딸의 이런 생각은 워라밸을 중시하고 남이 나에게 피해를 주는 걸 못 견디는 MZ세대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내가 이 얘기에 꽂혔던 건 딸과 내가 얼마나 다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였기 때문이다.




‘열심히’가 인생의 모토인 나와 ‘적당히’가 삶의 원칙인 딸. 우리의 차이는 이렇듯 크고도 넓지만, 같다고 다 좋은 게 아니듯 다르다고 다 나쁜 건 아니다. 나는 나와 다른 딸 덕분에 배움을 얻고 깨달음을 얻으며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있다. 딸이 없었다면 겁쟁이인 내가 운전면허를 딸 일은 평생 가도 없었겠지.


내가 운전면허에 도전한 건 딸이 던진 한 마디 때문이었다. 딸의 초등학교 시절, 도보로 딸을 데려다주는데 한 엄마가 자전거 뒤에 아이를 싣고 우리 앞을 빠르게 지나갔다. 그걸 본 딸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엄마는 자전거 못 타?”

“응. 엄마는 무서워서 자전거 못 타. 중심을 못 잡아서 자꾸 넘어져.”

“그럼 엄마는 자전거도 못 타고 운전도 못하는 거야? 대체 할 줄 아는 게 뭐야?”


딸의 한 마디에 낯이 뜨거워진 나는 그 길로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번에 2종 보통 면허를 따냈다. 운동신경도 둔하고 겁도 많은 내가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선 거다. 그 결과 나의 세상은 훨씬 넓어졌다. 남편 없이도 차로 어디든 갈 수 있게 됐고, 운전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다.


나는 때론 딸의 걸림돌이었고 또 가끔은 무조건적인 지지자였지만, 딸은 나를 성장시키는 동력이자 내게 깨달음을 주는 스승이었다. 나는 딸이 있어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딸이 나를 아프게 하고 또 힘들게 해도 끊임없이 좀 더 나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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