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선택이 옳다

-입시가 끝나도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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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치르는 2인3각 경기다. 우리의 경기는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하나의 소중한 교훈으로 이어졌다. 모든 선택은 언제나 아이의 몫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의 욕심으로 수시 입학의 기회를 몽땅 날린 딸은 온전히 정시에만 집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학교로, 학원으로 딸을 픽업해 가고 픽업해 오는 것뿐이었다. 나는 딸의 입시에 관한 한 어떤 것에도 개입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고, 딸이 어떤 대학, 어떤 과에 지원하는 게 좋을지에 대한 생각도 지웠다. 수능 점수에 맞춰 딸이 원하는 곳에 지원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쉬워졌다. 진작에 이래야 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은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예상과 달리 딸은 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시험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간 나에게 “엄마, 이번 시험 완전히 망했어. 아무래도 전문대 수시 2차에 지원해야겠어”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나는 실망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 계속해온 노력을 보답받지 못했을 때 가장 속상할 이는 내가 아니라 딸일 터였다.


빠르게 결과에 순응한 우리는 바로 다음날부터 전문대 수시 2차를 준비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집에서 가깝고 취업도 유망한 학과 위주로 여섯 곳을 추려 지원서를 제출한 덕분에, 여섯 곳 모두 합격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그중 한 곳을 최종 선택하는 일은 온전히 딸의 몫으로 남겨 두었다. 그렇게 딸은 19학번이 됐다.





딸이 대학에 입학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사라진 건 아니었다. 대학 입학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이루는 데 온 힘을 쏟아부은 딸은, 목표를 이룬 후 오히려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듯 무기력해졌다. 초반엔 아르바이트도 하고 대학생활을 즐기는 듯했지만 잠깐이었다. 2020년 초반 유행하기 시작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런 딸의 무기력을 더욱 부채질했다. 모든 수업이 화상으로 전환되면서 밖에 나갈 일이 사라졌고, 딸이 방 밖으로 나오는 일도 극히 드물어졌다. 조심스레 방문을 열어 보면 딸은 열에 아홉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잠을 자는 건지, 그냥 눈을 감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초조해졌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을 유추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는 딸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술에 취해 들어오면 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가족들을 못살게 굴던 아버지를 피하기 위해 어떻게든 일찍 잠들려 했던 나를.


나는 학창 시절 잠 많은 아이로 유명했다. 아침 자습 시간에도, 수업 시간에도 나는 틈만 나면 잤다. 한 번은 무섭기로 소문난 영어 선생님 시간에 졸다가 들켜 한 달 내내 서서 수업을 듣기도 했다. “내 수업에서 조는 애는 처음 봤다”며, 선생님은 자신의 수업 때마다 항상 뒤에 나가 서 있을 것을 명했다. 굴욕적이었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선생님이 낸 퀴즈를 맞히면 자리로 돌아와 앉을 수 있었다는 거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싫어하던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그 당시 유행했던 독해 문제집 ‘리딩 튜터’를 여러 권 반복해서 풀었고, 모르는 단어는 단어장을 만들어 미친 듯이 암기했다. 덕분에 국어와 수학에 비해 점수가 좋지 않았던 영어 성적은 그때를 기점으로 계속 상승했고, 학력고사*에선 심지어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당시 선지원 후시험 형태로 치러진 학력고사는 당사자에게 정확한 점수를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가채점으로 점수를 유추할 수 있었을 뿐. 시험도 지원한 대학교에 가서 치렀고, 결과 역시 합격과 불합격으로만 통보되었다.




좋지 않은 상황을 어떻게든 ‘회피’하려는 나의 회피 본능은 ‘잠’이라는 도피처를 만들어냈고, 그 ‘잠’은 ‘서서 수업받기’라는 벌칙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벌칙을 회피하기 위해 나는 ‘공부’했다. 어쩌면 나의 인생은 온통 ‘회피’로 점철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피가 늘 부정적인 결과로 귀결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나는 이 일을 계기로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면 무기력과 잠에서 불면과 우울로 이어진 딸의 ‘회피’도 긍정적 결론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지금 나의 이 불안과 초조가 훗날 ‘그땐 그랬지’라는 추억으로 뒤바뀔 수 있을까? 모르겠다. 그저 알 수 있는 건 딸은 지금 아주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것뿐.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또한 너의 선택이니 믿고 기다리며 지켜보는 것뿐이란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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