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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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하면'의 기본형인 '오죽하다'는 '정도가 매우 심하거나 대단하다'는 뜻입니다. 네이버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오죽하면 도둑질을 할까?'라는 예문이,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사람이나 사태의 정도가) 심하거나 대단하다'라는 뜻과 함께 '오죽하면 그 착한 영수가 모진 말을 다 했을까'란 예문이 등장합니다.
실제로 우리 일상에서도 '오죽하면 그랬을까'는 꽤나 자주 쓰이는 말입니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 오랜 가정 폭력으로 상처 입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공격한 경우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결과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거나 죄를 짓긴 했지만 정황상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 '오죽하면'이라는 말로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이번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는 댓글을 단 분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의아했습니다.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존칭의 의미가 아니라 아직 탄핵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기에 붙인 호칭입니다)이 선포한 '비상계엄'을, 네이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하여 사회 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곤란할 때 대통령이 선포하는 계엄'이라고 정의합니다.
2024년 12월 3일 당일, 우리 사회가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였다는 것에 동의하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요?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의 이유를 '야당의 의회 폭거에 대한 경고'라고 얘기했습니다. 세상에나, 총을 든 특수부대 소속 군인들이 국회에 진입해 국회의장과 야당 대표를 포함한 국회의원들을 체포하려 한 게 고작 '경고'를 위해서였다니, 눈에 뻔히 보이는 이런 거짓말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요?
더욱이 국회의원들은 우리 국민이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뽑은 민의의 대표자입니다. 여소야대 정국을 만든 것 역시 국민이라는 얘깁니다. 그러므로 다수당인 야당과 의견 충돌이 있다면 계엄을 통해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논의와 의견 조율을 통해 타협안을 이끌어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게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이라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국회를 전혀 존중하지 않았고, 역대 대통령들이 수 차례 개최했던 영수회담도 지난 4월 여론에 떠밀려 단 한 차례 열었을 뿐입니다. 그런 사람이 '야당의 의회 폭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얘기하는 건 말도 안 되는 변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죽하면'이라는 말을 비상계엄의 당위성을 역설하거나, 윤석열 대통령의 행위를 옹호하는 데 사용하는 건 옳지 않습니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좌파와 우파의 문제도, 진보와 보수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이고, 민주주의를 지켜내느냐 마느냐의 문제입니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이 오죽하면 그랬을까'라는 말은 제발 하지 마세요. 비상계엄 선포는 명명백백하게 잘못된 일이고,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눈 그의 행위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