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좋은 일일까?

-남에게 좋은 일이 꼭 나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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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딸의 고3 시절 대학입시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볼까 합니다. 딸은 아주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못하는 수준은 아니었어요. 중위권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성적이었죠. 수능시험을 잘 치른다면 인 서울까진 아니어도 수도권의 4년제 대학을 갈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었답니다. 그런데 제가 수시 지원할 때 조금 욕심을 부리고 말았어요. 기왕이면 더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어서 아이를 경쟁 속에 밀어 넣은 거죠. 딸이 글재주가 있는 편이었거든요. 그래서 미리부터 입시 준비를 해온 건 아니었지만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실기시험을 보는 문예창작과 3~4곳에 원서를 넣었어요. 서울예대, 동국대, 중앙대, 이런 곳들이었는데, 붙기만 하면 대박이겠다 싶은 마음으로 승부수를 띄워본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딸은 썩 내켜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엄마와 담임 선생님의 강권에 마지못해 '알겠다'라고 대답했을 뿐. 더욱이 당시 처음 치렀던 서울예대 실기시험에서 큰 충격을 받았던 듯해요. 경쟁률이 100대 1이 넘었던 데다,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주제로 글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았던 탓이죠. 하지만 전 그걸 몰랐어요. '기왕이면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게 딸에게도 좋은 일 아냐?'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으니까요.


문제는 다음 실기시험날 발생했어요. 동국대 시험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딸이 시험 당일에 시험 보러 가는 걸 거부한 겁니다. 저는 마음이 급하고 초조해졌어요. "OO아, 왜 시험을 보러 안 가? 원서 접수까지 했잖아. 지금이라도 가자. 그냥 주제 주면 그에 맞춰 뭐든 쓰면 돼. 잘못 해도 상관없고, 떨어져도 괜찮아." 이런 말들로 딸을 회유하며 어떻게든 시간 안에 딸을 데리고 가려고 안달복달했죠. 하지만 딸은 강하게 거부했고, 결국 그날 시험은 응시조차 하지 못한 채 지나갔습니다. 원서 접수를 했던 나머지 대학들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날 저와 딸은 서로 울부짖으며 격돌했어요. 그리고 둘 다 큰 상처를 입었죠. 제가 '왜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냐, 잘 되면 다 너에게 좋은 일이다'라는 얘기를 반복했다면, 딸은 '왜 내가 싫다는 걸 강요하냐, 내가 하기 싫다는데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는 거냐'라는 얘길 강하게 어필했어요. 하지만 그 얘기는 서로에게 가닿지 못했고,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 방에서 한참을 울었답니다.




이후 우리의 사이는 냉랭해졌어요. 당시 2년 가까이 이어진 상담 덕분에 조금씩 관계가 나아지는 중이었는데 도루묵이 된 거죠.ㅠ.ㅠ 전문가인 상담사 선생님 덕분에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거든요. 제가 몰랐던 딸의 마음을 아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고요. 1주일에 한 번씩 진행된 상담은 40분은 딸에게, 10분은 엄마에게 할애됐는데, 그 일이 있은 후 상담사 선생님은 저에게 이런 내용의 이야길 해주셨어요.

"어머니, OO이는 경쟁을 몹시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하는 성향이에요. OO이 얘길 들어보면 서울예대 시험에 가서 큰 충격을 받았던 모양인데, 그런 경험을 어머니가 또 한 번 하라고 강요하니 마음이 어땠겠어요? 물론 어머니 입장도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어 하죠. 하지만 그게 정말 자녀를 위한 일일까요? 그 부분을 한 번 생각해보실 필요가 있어요."


저는 그 이야길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제가 '다 너에게 좋은 일이야'라는 말로 강권했던 일들은 딸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 저에게 좋은 일이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 거죠. 제 이기심으로 딸을 극한까지 몰아붙였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이후 저는 딸이 원하지 않는 일은 절대 강요하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수능시험을 망친 아이가 전문대 수시 2차를 준비할 때도 옆에서 도와주기만 했을 뿐, 학교나 과를 온전히 딸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행히도 딸은 지원했던 대학에 모두 합격했고, 그중 본인이 원하는 곳을 골라서 갈 수 있었어요. 대학에 간 이후에도 열심히 공부해 좋은 학점으로 졸업했고요.




이때의 경험은 저에게 큰 충격이었고, 또 스스로를 성찰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스스로를 부족한 엄마이자, 모자란 엄마라고 생각해요. 때때로 과한 욕심을 부리고 그러다 실수를 하고 아이들과 갈등을 빚곤 하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잘못을 깨닫는 즉시 고치려고 노력한다는 겁니다. 지금 그나마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그 덕분이라 생각해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지난날의 나보다 좀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해요. 딸이 아니었다면, '남에게 좋은 일이 꼭 나에게도 좋은 일은 아니다'라는 걸 깨닫는 데 아마도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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