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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작업실, 딸의 필라테스

-엄마가 원고 지옥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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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한다. 돈을 번다. 소비가 늘어난다. 쉴 틈 없이 또 일한다.

요즘은 이런 패턴을 무한반복하고 있다. '아들의 학원비를 벌어야 해'라는 2023년 경제활동 제1원칙을 준수하기 위해 계속되는 마감을 견뎌내고 있달까. 이 또한 2월 중순이 지나면 한풀 꺾일 테지만, 지금은 원고 압박과 스트레스로 심박수가 계속 올라가고 있다. 두근두근 쿵쿵.




올해 고3 수험생이 된 아들을 위해 집 근처에 작업실을 마련해 줬다. 방음시설이 갖추어진 스튜디오인데, 월세가 상당하다. 음악 작업에 필요한 컴퓨터와 스피커 등 앰프 시설, 마이크까지 기자재를 들이는 비용도 적지 않게 들었다. 남편이 기자재 비용을 감당하고 월세는 내가 부담하기로 했는데, 실용음악학원비까지 더하니 100만 원이 넘는 비용이다. 그동안 '학원 가기 싫다는 애 억지로 보낼 필요 뭐 있나?' 하면서 국영수 학원에 안 보내길 잘했다 싶다(그 비용을 세이브해 올 1년 간 올인한다 생각하기로 했다!).


돈은 우리가 냈지만, 기자재와 스튜디오를 알아보는 일은 온전히 아들에게 일임했다. 본인이 의욕을 갖고 덤비니 짧은 시간 내에 그럭저럭 괜찮은 작업실 공간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 아들 말로는 1년 동안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한다는데, 나름 각오가 남다른 듯해 다행이다 싶다. 재능에 의욕이 더해지면 뭐가 돼도 되겠지. 이제 남은 건 멘털 관리와 버티기 한 판인가.

아들! 올 한 해, 너도 나도 잘 버텨보자꾸나.




딸의 첫 출근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몸이 다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근을 하게 된 탓이다. 내 입장에선 별로 달갑지 않은 직장이었던 터라, 그만둔 게 아쉽다기보다는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저 시급 수준의 월급을 받고 그다지 성장 가능성도 없는 직장에 다니느니, 조금 취직이 늦어지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다. 영상 편집을 배워보고 싶다니 그쪽을 알아보라고 해야지.


다행히 딸은 조금씩 우울모드를 벗어나고 있는 듯하다. 매일 짧게라도 밖에 나가보겠다며, 침대에 누워만 있던 예전과는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친구를 만나고, 도서관에 가고, 알바를 찾아보고, 필라테스를 다니고... 긍정적인 변화다(돈은 많이 들지만...). "엄마, 필라테스 가서 인바디를 쟀는데, 선생님이 내 몸엔 근육이 하나도 없대. 다 체지방이라네"하면서 웃기도 하고, 먹는 양도 늘었다. 이렇게 조금씩 몸에 근육이 붙고 건강해지면 우울증과 불면증도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 중이다.




사실 내 입장에서 보면 아들이나 딸이나 불안하고 답답할 수 있는 상황인데, 요즘은 그냥 마음이 담담하다. 자식 일로 안달복달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풀리는 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들의 삶과 딸의 삶, 나의 삶이 어느 정도 분리가 됐달까.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고 존중하면서 기다려주는 마음. 이제야 비로소 그런 엄마가 되어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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