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별하다

-주도적이고 맹목적인 관계의 비밀

by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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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어에 민감하다. 글 쓰는 일이 업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유독 아끼는 어휘도 여럿 있는데, '각별하다'도 그중 하나다. 사전에 찾아보니 '어떤 일에 대한 마음가짐이나 자세 따위가 유달리 특별하다'라는 의미라는데, 내가 이 단어를 좋아하는 건 의미와 발음 사이의 모순 때문이다. 발음할 땐 세고 모난 느낌인데,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유순하고 애틋해서 자꾸만 입 안에서 되뇌게 된다. 그 모순의 간격이 마음에 들어 글을 쓸 때도 아껴 사용하게 된다.



'각별하다'라는 단어는 주로 사람과의 '사이'나 '관계'를 표현할 때 사용된다. '각별한 사이', '각별한 관계'... 내게도 그런 관계가 있다. 가족들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만나는 몇몇의 친구들은 다 나와 각별하다. 수시로 연락해 근황을 나누고, 걱정거리나 고민거리를 공유하며, 전시회나 공연, 여행 등을 함께 가기도 한다. 대학 시절 동기로 만나 지금까지 30년간 함께해 온 친구들이니 애정의 깊이가 남다른 건 당연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오래 함께했다고 해서 다 각별한 관계가 되는 건 아니다. 나의 관계는 굉장히 '주도적'이면서도 '맹목적'이다. 주도적이란 건 내가 사람에 대해 가진 기준이 높고 벽이 높아서 아무나 친구의 영역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는 의미이고, 맹목적이란 건 친구가 되긴 어려워도 일단 친구가 되면 뭐든 그 사람의 100%를 수용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남들 다 아는 사실을 모를 때도 많다. 뭐랄까, 친구의 장점만 보고 단점은 보지 않다 보니 객관적이지 못하고 맹목적일 때가 많달까.


얼마 전 한 친구와 마음속으로 절교를 선언한 것도 그 때문이다. 참 좋아했던 친구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친구와의 관계는 내가 손을 놓으면 언제든 끝이 날 수 있는 관계로 변해 버렸다. 늘 내가 먼저 연락해 안부를 물어야 겨우 답신이 오는 정도의 관계... 그러고 보니 그 친구와 처음 친하게 된 것도 내가 먼저 다가갔기 때문인 것 같다. 뭐 어쨌거나 30년 가까이 이어온 관계임에도, 그 친구의 사소한 문자 답신 하나에 그냥 맘이 툭 끊어져 버렸다. '나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는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굳이 애쓰지 말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뒤론 그 친구에게 연락을 끊었다. 어쩌면 그 아이는 내가 자신에게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다는 것조차 모를지도 모르지만, 이젠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각별하다'는 건, 혹은 '각별한 관계'라는 건 일방통행이 아니라, 서로의 공감과 애정을 기반으로 한다. 나에게 각별한 친구들이 나를 각별하게 여긴다는 확신. 그게 없이 '각별하다'라는 의미는 완성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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